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 논설위원

작품의 진위를 감정할 때 주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서명(사인)이다. 누구의 작품이란 것을 확고하게 해주는 징표가 서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서명이 없는 작품이 있다. 작가가 서명하는 것을 잊는 경우도 있지만(서명하는 것을 주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기분으로 그냥 뒀다가 세상에 나오는 경우가 그것이다. 

과거에는 서명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작품이 상품으로 거래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누구의 작품임이 틀림없다고 해도 사인이 없으면 제값을 못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보증서라고 할 서명이 없고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림 자체가 그 작가의 서명을 대신해주고 있음에도 이를 의심하는 것은 자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가 서명이 된다는 것은 작품에 나타나는 여러 특징, 예컨대 필력이라든가 색채의 선택이라든가 소재의 기호 면에서 그 작가 고유의 특징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한 굳이 서명이 없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이에 대한 전문적 판별력이 없을 때 서명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에 따라 서명하는 데서도 그 작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점이 많다. 서양화의 경우는 대개 영자로 서명하는 것이 보편화됐고 이외 한자나 한글로 서명하는 예도 있다. 글자를 인쇄체로 정확하게 쓰는가 하면 흘림체로 쓰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도상봉 화백과 유영국 화백의 사인은 인쇄해놓은 것처럼 또렷하다.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낙관(인장)을 그려넣는 특이한 예도 있다. 과거 손응성 화백이나 변시지 화백이 서명하고는 낙관처럼 붉은 색채로 인장을 그려 넣었다. 동양화에서 호를 쓰고 낙관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대대로 내려오면서 작품을 본 사람이 특별히 감상을 기재하고 자신의 낙관을 곁들이는 것은 독특한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애초에 제작한 작가에만 머물지 않고 먼 훗날 뛰어난 감상가에게로 이어져 품평됨으로써 그 작품의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이다. 

서명이 없는 작품에 누군가가 서명을 대신했을 때 작품은 대신 쓰여진 서명으로 인해 일시에 가짜가 돼버리는 예도 있다. 작품가 때문에 그런 일이 저질러지지만, 이것이 발견됐을 때는 작품 전체가 가짜 누명을 쓰게 된다. 

이중섭 화백의 '투우' 작품 하나가 이런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서명이 없는 이중섭 작품에다 친절하게 화랑 주인이 사인을 대신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은 틀림없는데 사인이 이중섭 사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자 화랑 주인이 이실직고하면서 가짜로 사인한 것이 드러나게 됐다. 그래서 다시 사인을 지우는 해프닝이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아마 그런 일이 없고 사인이 된 채로 전해졌다면 두고두고 의심을 일으킬 뻔했다. 

사인을 어디에 하는가도 중요하다. 작품 전체의 균형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 하단의 왼편이나 오른편에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예외적으로 위쪽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역시 작품 전체의 균형을 생각해서다. 사인 자체가 그림의 일부로 수용되는 특이한 예도 있다. 변종하 화백의 그림엔 사인인지 그림의 한 부분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것이 적지 않다. 한껏 멋을 부린 사인이 그림의 격조를 드높이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어떤 작가의 경우는 사인을 앞면 한군데만 하지 않고 화면 뒷면에 한글, 영어, 한자 등 여러 모양의 사인을 가득히 채워놓는 것이다. 위작에 대한 작가 나름의 방지책이겠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역시 작품은 그 작가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이를 '아우라'라고 한다. 그것은 전체로서 다가오는 그 작가의 정신의 결정체이다. 직관에 의해서만 판단되는 것이다.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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