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편집부장 대우

바둑에서 9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정치에도 입신이 있는 모양이다. '정치 9단'은 원래 일본의 정경유착형 노회한 정객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국내 정치에서 '정치 9단'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1989년 당시 민정당 대변인 시절 5공 청산 문제를 풀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야 3당 총재가 회동을 앞두고 있을 때 "대통령과 세 분 총재는 모두 정치 9단으로서 입신의 경지에 있는 만큼 묘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당시 청와대가 박 대변인에게 전화해 "대통령은 9단이 아니라 한 단 더 올려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 항의했다는 일화도 있다. 실제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 9단'은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온 '3김'에게 맞는 수식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장 노동자에서 변호사, 3선 국회의원, 두 번의 서울시장을 거쳐 이제 국내 첫 3선 서울시장을 노리는 정치인이 있다. 영화 '특별시민' 속 변종구는 한마디로 '정치 9단'이다. 물론 그의 꿈은 대권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가 필수다.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노련한 정치인과 젊은 광고 전문가도 유입한다. 젊은 유권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청춘콘서트를 열고 랩도 선보인다. 선거는 악재의 연속이다. 선거기간 도로에 씽크홀이 발생해 사람들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아내가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의혹으로 구설에 오른다. 하지만 특유의 달변과 인맥과 정치공작으로 노련하게 돌파해 나간다. 심지어 음주운전을 하고 뺑소니 사고를 내고도 딸에게 뒤집어씌운다. 말과 이미지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네거티브 행태도 현실 정치와 판박이다.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위해 가슴노출, 정치공작도 불사한다. 약점을 공략하고 상대 후보의 광고를 비틀어 교묘히 활용한다. 지지율이 하락하자 노선이 다른 후보와도 손을 잡으려 한다. 당연히 우리가 바라는 정치인은 아닌데 이상하게 기시감이 든다. 

대선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선거는 국민들이 국가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날이다. 아무리 노련한 정치인도 수많은 국민들을 속일 수 없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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