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40대의 남매(男妹)가 합세해 '70대의 노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법자는 명문대학 출신이며, 주위에서 부러움을 받아온 처지다. 이것이 외형적 모습과 달리, 실망감에 젖어들게 만든 우리사회의 '내면적 모습'이다. 

부모를 찾아가 정담(情談)을 나누는 '인정어린 모습'과도 대조적이다. 주변으로부터 '도덕군자(君子)의 나라'로 칭송을 받아왔던 우리전통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지켜보는 사람들로서 말문을 막히게 한다.    

세상을 향해 '고귀한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성장하도록 유도해온 것이 '자비로운 부모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분신(分身)으로 여기며, 애지중지(愛之重之)해온 처지다. 두꺼비 어미에 비유하듯,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껍질까지 제공하는 희생정신'으로 살아온 것이 한국부모였다. 그래서인지 은중경(恩重經)에는 '부모를 양어깨에 메고, 천만번에 걸쳐 수미(須彌)산을 오르내린다한들, 은혜에 미치지 못한다'는 구절이 들어있다. 

낳고 길러준데 대한 부모 은혜에 대해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시해온 '미풍양속'이다. 하지만 가족계획시대를 맞으면서 당사자들은 '왕자와 공주'처럼 변신하며, 행세하게 됐다. 거기에다 성취욕에 불탄 나머지 '자기중심사고'에 젖어왔음으로, 불혹(不惑)의 나이에도 부모에 의지하며, 재산까지 노려온 처지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이 결국 살해로 이어지게 만들었음으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윤리규범'마저 팽개친 것과 마찬가지다. 

당사자는 암기위주로 명문대학에 입학했을 뿐 '참다운 인생관'이 무엇인지,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채 살아왔다. 나이만 하더라도 '30이 입지(立志)이고, 40을 불혹(不惑)'으로 표현해왔다. 전자가 향후에 다가올 인생에 대해 의지를 앞세워야할 연령대라면, 후자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신념과 도덕규범이 정립될 때임을 암시하고 있다. 

현실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환상(幻想)만을 키우면서 살아왔다. 그런 까닭에 건전한 삶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존적 사례'는 하나에 그치지 않은데서 우려를 낳고 있다. 모두가 급조된 정책과 사회문화가 불러온 '부정적 후유증'이다. 가난하더라도 천륜(天倫)을 중시하며,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채 부자관계마저 '서바이벌게임(survival game)'에 비유하며, 이전투구를 버릴 것인가. 분기점에 놓인 것이 확실하다. 

제주도는 그동안 물질문명에서 뒤졌지만, 도덕측면에서 자부심을 가져왔다. 지금도 혈족(血族)중심의 제례와 벌초에 이르기까지, 유배인의 후손답게 윤리의식에 젖어있다. 이것이 '인의예지(仁義禮智)'에 근거한 도덕규범임을 고려할 때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할 정도로, 악한들이 나오지 않아왔다. 히말라야에 위치한 부탄처럼, 물질적으로 궁핍하더라도 '행복지수'에 우선가치를 둬온데 따른 것이다. 

율곡이 제창한 '중의경재(重義輕財)'의 도덕규범과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의로움을 중시하는 대신, 재물을 경시하라'는 경구와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근본에서 발달된 서구문명의 전파과정에서, 우리민족만이 지녀왔던 '고유한 도덕규범'까지, 무가치한 것으로 바라보며 폐기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것이 서구문명에 대한 '무비판적인 동화(同化)'이며, 이런 흐름은 '오늘날 조기유학의 붐'까지 낳고 있다. 

항해시대에 서구인마저 감탄해온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참뜻을 떠올리면서, 동양의 도덕과 서양의 과학기술을 융합한 '한국형모델'을 창안하고, 미래를 향한 재출발을 제주도에서 열어갈 때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어버이날'에 대한 근본적 취지를 되새기며, 지나온 세월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를 다져나갈 때인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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