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영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논설위원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 구한말 나라가 일제의 손에 넘어가는 망국의 시점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바깥으로는, 주변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온통 강성(强性)이어서 자국의 이익만을 탐해 그 틈바구니에 낀 우리의 신세는 아랑곳없다.
이 와중에 북은 핵실험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하고 미국은 거기에 군사적 대응까지 거론하고 있으며 여기에 뒤질세라 중국은 한·미가 한 발짝이라도 삼팔선을 넘어오면 가만히 보고 있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판국에 우리에게는 대통령이 부재(不在)하다. 대통령은 곧 선출될 예정이지만, 그 날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급박한 사안들이 시간의 목을 조르고 있다.
우리는 공포와 충격에 익숙해져서인지 큰 동요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외국의 친지와 지인들은 불안해서 어떻게 살고 있냐며 우리의 안부를 물어온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바깥의 사정으로 인한 안보 문제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른바 인구절벽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데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대로 가다가는 2100년에 우리 국민 절반이 사라지고 2500년이면 민족이 사실상 소멸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구의 문제는 단순한 국세(國勢)의 문제가 아니다.
일하고 소비할 사람이 없으면 경제의 기반이 함몰되고 국방에서부터 각종 사회복지제도가 붕괴되는, 그래서 나라의 근본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신생아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잦아드는 현상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기실 그 원인을 파고들면 더욱 심각한 우리 내부 문제의 적나라한 민낯을 발견하게 된다.
결혼해야 할 나이에 있는 청년들이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어렵게 결혼하더라도 당장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없는 흙수저들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의 대가 전부를 집을 마련하는 데 쏟아 부어야 한다.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저축해서는 집을 장만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자신처럼 경쟁에 매몰돼 살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쯤이면 지금의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비하하는 젊은 세대들을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어디를 봐도 어느 하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문제들은 만만한 게 없다. 그러나 체념하고 포기해서도 안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은 우리들은 지금껏 이보다 더 어렵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잘 헤쳐 나왔으며, 오히려 그 어려운 시기를 버텨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도약의 발판으로 삼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안팎으로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의연히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그 계기로써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기회를 가졌고, 그를 통해 우리는 결집해 문제해결과 그를 넘어 전진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인사들은 모두가 자신만이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이 우리의 문제 전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대통령 선거가 모름지기 초인(超人)을 뽑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후보자의 면면 중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신중해야 할 것은 우리 국민의 우수한 에너지를 생산적으로 결집해 정당하고도 정의로운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자를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다시 분열돼서는 안 되며, 그 분열로 인해 놓치게 될 앞으로의 5년은 회복되기 어려울 만큼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