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림 서귀포의료원장

잔인했던 4월과는 달리 5월은 어린이날을 비롯해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고 풍요롭게 한다. 이맘때면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을 늘 떠올린다. 이제는 은사님께서 고인이 돼버려서, 스승의 날도 필자에겐 의미가 없는 날이 돼버린 것 같아서 섭섭하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때였고 2월쯤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는 겨울이 지금보다 한참 더 추웠던 것 같다. 담임이었던 돌아가신 은사님께서 필자를 부르더니 졸업식 날 답사를 하라면서 원고를 줬다. "한라산 중턱에 쌓인 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정든 교정을 떠나야 하는…"으로 시작되는 답사였다. 밝고 가볍게 치러져 감정이입이 별로 없는 요즘의 졸업식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재학생의 송사에 이은 졸업생 답사, 그리고 작별의 노래와 졸업식 노래가 이어지면서 장내는 숙연해지다가 마침내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마침 할머니께서 참석해서 축하해줬는데 그래도 앞에 나가서 우등상장도 받고 답사도 읽고 해 그나마 흐뭇해했을 것이라 추억해본다. 

초등학교 시절에 은사님께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대학교 동창이 찾아오면 쌀밥을 대접해야 하고, 중·고등학교 동창은 흰쌀 섞은 밥을, 그렇지만 초등학교 동창은 그냥 먹던 보리밥을 대접해도 흉이 안 된다고 했다. 5학년과 6학년 두 해에 걸쳐 은사님께서 담임을 맡아줬고, 당시는 중학교 입시가 있어서 공부를 많이 시켰던 것 같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붙들어서 공부를 시켰었는데 애써준 은사님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여기저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후로 한참의 세월이 흘러서 우연치 않게 필자가 서귀포에 개원을 하게 되고, 마침 토평초등학교에서 교감을 맡고 있던 은사님을 자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서귀포 재직 시절, 스승의 날에는 언제나 찾아가서 감사하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여러 동창들이 함께 못 갔던 것이 내내 아쉬웠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동창모임에는 항상 참석해서 좋은 말씀과 여러 가지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된 암이 많이 진행돼 버리는 바람에 일찍 돌아가셔서 이제는 만나 뵈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니 가슴만 아플 뿐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언 50년이 다 돼간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은 쉼없이 흘러만 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 소중하듯 우리 동창들과 선생님과의 만남은 어떤 전생의 인연이라도 있는 듯 중요한 시절에 2년간이나 담임을 맡아줘서 우리에겐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번 스쳐 지나가면 모든 것이 과거로 흘러가고, 기억이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우리의 뇌리에 저장됐다가 조금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가 숨쉬고 살아있는 동안 우리와 같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공유하는 벗들과 남겨진 시간 동안, 만나서 지난 일들을 즐겁게 되새기고 싶다. 우리들과 정해진 시간동안 만났고 소중하고 귀한 추억을 남기고 떠난 은사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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