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논설실장·서귀포지사장

제19대 대통령선거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독주체제 속에 종반전에 다다르고 있다. 문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양강체제가 무너지고 2중(안철수·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2약(유승민 바른정당·심상정 정의당 후보)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보수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 치하에서 제주특별자치도의 발전과 제주국제자유도시 완성을 위한 각종 제도개선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고 4·3의 완전한 해결에도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제주도민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큰 진전이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특히 4·3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과 관련, 희생자 및 유족 배·보상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에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홍 후보조차 한 목소리를 내면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5·9 조기 대선으로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제주도민들의 숙원이 풀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가운데 생존하는 4·3 수형자들의 한도 함께 씻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3 수형자들이란 4·3사건이 일어난 해인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등 두 차례에 걸쳐 제주도에서 열린 군법회의 결과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분산 수감됐던 2530명의 제주도민을 말한다. 이들은 대부분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께 당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거나 행방불명되고 일부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수형자는 사회적 냉대와 국가의 감시 아래 평생을 살아왔는가 하면 자식과 손자들까지 연좌제에 묶여 공직 진출길이 봉쇄되는 등 차별과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 수형자 가운데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는 18명이 지난달 제주지방법원에 제출한 '4·3 수형 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청구서'에 첨부한 호소문을 보면 70년 가까이 맺힌 한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정모 할아버지(96)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4·3때 잃고 형님 소식도 알 길이 없고 내 목숨도 살아있는게 기적 같다고 생각한다. 형무소 조사과정에서 받은 고문으로 상체를 바로세울 수 없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털어놨다.

한모 할머니(93)는 "조사받으면서 당한 고문으로 손가락이 꺾어지고 같이 형무소에 끌려간 아들은 고아원에 맡겨져서 병들어 죽고 말았다. 그 긴 세월 가슴에 묻어둔 말이 너무 많다. 돈 몇 푼 지원안해줘도 죄인명부에서 내 이름만 지워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꽃다운 나이에 잡혀가서 감옥살이를 했고 꼬리처럼 따라붙는 4·3 수형자라는 것이 너무 싫다. 죽을 나이가 다 됐는데 더 이상 뭘 바라겠느냐", "전과자로 사찰인물이 돼 어디를 가든 신고해야 했다. 지서나 정보과 등에서 조사 나오고 하는 사업마다 규제를 만들어 고발을 하는 바람에 파산했다"는 등 그동안 당한 설움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4·3 수형자들을 양산한 당시 군법회의는 기소장이나 공판조서, 판결문 등 소송기록이 없는 정상적인 재판이 아니라는 사실이 2003년 10월 발간된 정부 공식문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는 기존 사망자·행방불명자·후유장애자의 4·3희생자에 수형자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구 형법 위반(내란죄)이나 구 국방경비법 위반(적에 대한 구원통신연락죄·이적죄)으로 처벌받은 전과자라는 기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4·3의 완전한 해결에 이들 수용자의 명예회복이 빠져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적어도 팔순에서 90세 후반에 이르는 수형자들이 더 눈을 감기 전에 법원이 재심 결정에 이은 현명한 판결로 역사 바로세우기와 사법 정의를 구현할 것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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