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의 집권 3년째로 접어들면서 새삼,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겠다던 대통령선거 당시의 공약이 되뇌어지고 있다.

 되돌아보면,제주 ‘평화의 섬’의 제안은 1991년 4월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역사적인 제주도 한·소 정상회담이 기폭제가 됐다.제주를 탈냉전을 위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민간운동이 일어나면서 국내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도 이 무렵이었다.이러한 ‘평화의 섬’ 제안은 사계의 호응과 성원을 받아 마침내 김대중대통령의 제주도 관련 주요공약으로 채택된 것이다.

 그런데,취임 후 ‘평화의 섬’ 문제에는 전혀 언급이 없었던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1998년 9월,제주도 순방시 ‘국제자유도시’ 지정 검토를 지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국제자유도시’ 지정문제는 국제자유도시기획단이 제주도에 구성되고,오는 4월말까지 용역계약이 체결되어 개발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궁금한 문제는 ‘평화의 섬’과 ‘국제자유도시’와의 상관관계이다.여기서,세 가지 가설을 상정할 수 있다.

 가장 긍정적인 기대는 ‘평화의 섬’ 지정을 목표로 하여 그 수단으로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는 가설이다.도지사가 바뀌기 전 한때 제주도는 ‘평화의 섬’을 구체화하기 위한 실천전략으로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자유무역지역과 국제관광도시를 취하는 구상을 가다듬은 바 있다.이 구상안에는 아울러 스위스의 제네바처럼 정치 외교 경제 등에 있어 국제분쟁의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할 수 있는 평화지역으로 제주도를 자리매김하는 전략도 담겨 있다.이에는 물론 주변국가와의 협력기반을 확고히 해서 지역평화기구뿐만 아니라,세계적인 국제기구를 유치하고 각종 회의의 국제마당으로 그 윤곽을 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기대는 ‘평화의 섬’과 ‘국제자유도시’지정을 각각 별도로 추진하는 가설이다.동북아 평화와 한반도의 안정과 관련한 제주도의 지정학적 역할을 강화하는 전략을 담은 이 구상에 따르면,‘평화의 섬’ 선언은 제주도에 일체의 군사시설 및 이와 관련된 항공기와 선박의 기착과 입항을 금지하고,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정상회의를 유치하여 제주도가 동북아 평화구축의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안이다.또한,이와는 별도로 제주도에 관광과 비즈니스,물류 그리고 금융기능을 포함한 ‘국제자유도시’를 육성함으로써,‘평화의 섬’ 지정은 비무장,비군사화의 전략에 머물게 되는 구상이다.

 마지막으로 매우 우려되는 전망은 ‘평화의 섬’ 지정 공약의 실종과 함께,허울뿐인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는 가설이다.건설교통부와 제주도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차 국제자유도시 중간 도민공청회 배포 자료에 의하면,국제자유도시란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유치·장려하는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리면서,그 어느 곳에서도 ‘평화의 섬’과 관련된 용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데서 쉽게 짐작된다.더욱이,올해 초 정부가 확정 발표한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에도 21세기 통합국토구현을 위한 전략추진에 ‘평화의 섬’에 관한 표현이 없을 뿐만 아니라,제주도를 단지 아·태지역의 국제관광자유지역으로 육성한다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제주도의 비즈니스,물류,금융을 아우르는 복합형 ‘국제자유도시’ 구상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바야흐로, 제주도는 4·3특별법이 제정 시행됨으로써 지난 세월 피비린내 나는 이념갈등마저 용해해 낼 수 있는 명실상부한 ‘평화의 섬’으로 그 초석을 다져 가고 있다. 이 마당에 적어도 대통령의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세워진 ,제주도 세계 ‘평화의 섬’ 지정 문제는 인권적인 차원에서라도 정부의 깊은 성찰이 따라야 할 것이다.<양석완·제주대 교수·법학><<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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