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획=문화가 없는 거리는 가라
거리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소통의 장소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하나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거리는 세계와의 만남을 이뤄내고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은 토론의 장이자 곧 시장이었으며 우리네 마을 들머리에 서 있던 성황당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 인간과 신의 만남이 이뤄지던 곳이었다.
우리네 삶의 원형질을 이루는 숱한 문화들 대부분은 거리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것들을 공동체 문화라고 부른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거리는 공동체와 삶의 문화 대신 생산과 소비의 소통이 강조됐다. 삶의 문화는 거리에서 내쫓기고 그 자리에서 자본의 황량함이 들어앉았다. 거리는 더 이상 타인과의 소통을 꿈꿀 수 있는 열림의 공간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거리문화에 대한 관심은 문화 없는 거리, 삶의 부재한 거리가 만들어 냈다. 자본의 거리에서 골방으로 쫓겨난 문화는 다시 그들이 태어났던 거리로 되돌아오려 하고 있다.
▲거리를 되찾자 반항의 몸짓
‘비판적 대중’(Critical mass), ‘거리를 되찾자’(Reclaim the Streets).
비판적 대중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삶의 다름을 전파하는 것.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가진 가치 우위적 사고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집단적으로 자전거 타기 운동을 벌이며 다름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미국을 중심으로 캐나다, 유럽,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획일화된 가치에 반기를 둔다.
이들에게 자본만이 주요 관심사인 거리 역시, 자본이 아닌 인간과 자연에 대한 가치를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퍼포먼스를 개최한다.
91년 영국에서 시작한 ‘거리를 되찾자’는 운동으로서의 거리문화를 주창한다. 이들은 일상적 삶이 가위 눌리고 고통받고 침식당하는 거리를, 거리가 가진 권력의 해체를 요구한다. 그래서 거리가 삶을 즐기고 창조하고 풍요롭게 하는 영토로 바뀌기를 원한다.
자동차가 점거한 도로에서 다른 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도로를 점령하고 춤과 노래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삶이 사라진 획일화된 거리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두 단체들은 우리의 거리문화 복원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다.
▲ 제주의 거리는
외국의 거리문화에 대한 주장이 다분히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이념적 가치를 표방하고 있는 반면 제주의 거리문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막 삶이 없는 거리에 대한 반성적 시각이 싹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거리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치단체에서는 ‘00거리’라는 식의 거리 명명으로 특정 거리에서 각종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서귀포 이중섭거리, 칠성로 차없는 거리 등으로 대변되는 이런 이름 붙이기식의 거리축제는 다분히 일회성으로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거리가 가진 본래의 속성에 대한 이념적 반성의 부재가 낳은 것이다.
거리문화를 단순히 거리에서 행해지는 퍼포먼스, 노래 공연 등으로 인식하는 획일적 사고로는 ‘소비 만능’의 거리를 근원적으로 탈바꿈할 수 없다.
거리공연을 해 본 공연자들은 공연의 어려움으로 인근 상인들의 반발을 들고 있다. ‘시끄럽다‘‘장사에 방해된다’는 항의가 그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재의 거리가 더 이상의 사람과 사람의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상품과 자본의 유통과 소비가 더 중요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품과 자본의 유통은 제주의 거리를 더욱 획일적으로 만든다. 제주의 거리 어느 곳을 봐도 똑 같은 간판, 똑 같은 건물이다. 거리의 특성이 없다. 이중섭 거리, 칠성로 차 없는 거리도 마찬가지다. 이중섭 거리에는 예술적 향취를 느낄 수 없고 칠성로 차 없는 거리는 소비의 욕망만을 자극한다.
▲일회성 거리축제는 가라
거리문화는 우리네 삶을 잉태했던 거리의 본 모습을 되돌리려는 문화운동의 양식이다. 거기에는 소비 만능의 도시를 누구나 걷기 쉽고 마음껏 뛰놀 수 있고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문화가 있는 도시로 만들려는 의식적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자치단체에 의한 상명 하달식의 거리명명은 올바른 거리문화의 대안일 수 없다. 거리문화 가꾸기 운동은 소비의 중심인 거리를 인간 중심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리문화단체들은 하나같이 거리 되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각종 공연은 이런 거리 되찾기 운동의 한 방식이다.
이제는 일회성 거리 축제에 대한 관심에서 탈피, 소비와 자본의 거리를 인간 중심의 삶의 문화가 넘치는 거리로 바꾸기 위한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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