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보전조정위원·시인·논설위원

잠자코 있으라고 할 때, 잠자코는 어떤 코인가. 잠을 자면서 코를 골듯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라는 뉘앙스가 넘치는 단어다. 여기에 비견할 제주어로는 '속솜허라'가 있다.

'속솜'은 원래 속으로 쉬는 숨으로 줄여서 '속숨'이다. 말참견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속으로 들숨을 참듯이 참견하지 말라는 경고다.

국어사전에 '샅'은 두 다리가 갈린 곳의 사이, 사타구니라고 해서 '샅샅히'로 쓴다. 빈 곳 없이 모조리라는 뜻으로 살이 접히는 틈을 총칭하는데 제주어로는 저금탱이가 있다. 저금탱이는 은밀한 곳이기에 슬며시 만지면 조골립다. 조골립다는 말은 '조곱다'에서 나왔는데 표준어로는 '간지럽다'다. 그만큼 쑥스러워서 '하간듸'로 대신 쓴다. 하간듸란 여기 저기 여러 곳을 말한다.

졸음이 올 때 입을 크게 벌리고 심호흡을 하는 모양을 하품이라고 하는데 한꺼번에 크게 숨을 뿜어낸다는 의미가 크다. 제주어로는 하품을 '하우염'이라고 한다. 하품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내 쉬고 얌전하게 닫는 모양에 비해 '하우염'은 한꺼번에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하품과 같지만 '우염'이라는 소리에서 크게 벌린 입을 좌우로 한 번 더 틀어주는 의태어까지 내재돼 있다. 그러니까 고양이나 사자가 하품을 할 때, 하품을 하는지 하우염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엿보면 알 수가 있다.

그립다는 말은 제주어로 기렵다고 한다. 그립다가 단순히 그리워한다가 아니듯 기렵다도 그냥 기려운 것이 아니다. 기렵다가 지독히 그립다는 의미를 필두로, 뭔가가 매우 필요하지만 없어서, 혹은 못 해서 아쉽다는 안타까움도 있고, 맛 좋은 음식 따위를 먹고 싶다는 절절함도 있다.
표준어인 그리움을 들여다보자. 그리움은 마음으로 그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름은 기다리는 비가 머물러 있다는 의미이고, 그림자는 그리움이 낳은 또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그림은 그려야 하므로 사진처럼 찍지 못한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민 절반 가까이 노비신세나 다름없어서 몰태우리로, 보제기로, 감귤 진상으로, 노 젓는 사역으로, 전복을 캐서 바치는 노역으로 혼시반시 놀 틈이 없었으니 애교인 홍에나 홈세는 커녕 말을 줄여서 쓰기도 바빴다.

키는 키우다에서 파생됐다. 키워야 자라니까 하는 말이다. 지럭시는 길이에서 파생됐다. 길을 '질'이라고 하는데 길은 길어서 길이다. 길이 짧으면 그건 울타리 안이라는 뜻인 올래인 거다. 올래도 원래는 '울내'다. 그래서 기다림은 선천적으로 길다. 길게 기다려야 만나지는 걸 어쩌지 못해 자로 재느라고 길이가 생겨난 거다. 길이도 그래서 길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엔 식게 집 아이는 기가 살았다. 먹을 것을 갖고 나오면 얻어먹으려고 우쭈아주고 '혼 직만 혼 직만' 했는데 육지 아이들은 '한 입만, 한 입만' 했다. 여기서 혼직이란 하나의 몫을 의미하는'직시'다. 직시란 한자로는 '職數(직수)'로 한 몫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한 역시를 했으므로 한자로 '役收(역수)'로 썼다고 추정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또한 수고한 대가를 받을 만큼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암시가 들어있다. 다시 말하자면 식게 집 아이를 추구리는데 동참했으니 제몫을 나눠 달라는 동심인 거다.

특이한 단어로 '역불'이라는 말도 있다. 보통 '역불로'로 많이 쓴다. 표준어로는 '일부러'와 맞먹는다. 역불로라는 말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될 것을 안 되게 하는 심술이 내재돼 있는데 한자로는 '逆不'이다. 안 되는 것이 넘친다는 '溢不(일부)'보다는 역불로가 윗길인 거다.

'기쁨'을 단순히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면 국어사전 수준에 머무는 거다. 좀 더 그럴 듯하게 풀이를 하면 신나는 기운을 뿜어내는 활력인 거다. 따라서 슬픔도 쓸쓸하고 싶음이 줄어든 말이다. 기쁘다를 제주어로는 '지꺼지다'고 한다. 왜 기쁨을 지꺼지다고 하는지는 필자도 모른다. 그래서 제주어가 어려운 만큼 세계적인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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