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사회적으로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뜻한다. 이는 지배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 격언으로,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당시의 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인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용어다.

'문화예술섬 조성'은 원희룡도지사가 문화정책의 거시적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이제 원도정의 임기도 반을 넘어 이미 후반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목표는 도지사만의 구호처럼 느껴진다.

문화예술은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지고의 가치다. 문화와 예술이 번영하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관념은 오랜 기간 동서양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축적한 사회 제부면의 통·관념들 속에서 가장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사회문화적 합의가 이뤄진 가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유별난 도백의 구호로만 들리는 것은 지역사회 리더그룹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요즘 '일자리'가 시대적 화두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거리'다. 예술가들의 일거리는 시각예술의 경우 작품 한 점이 팔리는 일이요, 공연예술가들에게는 공연티켓이 팔리고 극장에 관객이 들어차는 것이다. 작가들에게는 책이 팔리는 일이며 원고청탁이 끊이지 않는 일이다. 이들 일거리가 많아지고 소비된다면 문화예술계의 생태계는 건강해지는 것이다. 

도정의 문화예산 3%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한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공공적 노력 이전에 민간영역에서 이뤄지는 자발적 생태계의 건강성이 중요하다. 

필자의 학부시절 당시에는 선·후배관계 등으로 해서 재학생들이 전시장의 작품을 주로 걸어주고 그 덕에 뒤풀이에서 맛난 음식과 음주를 나누기도 했던 문화가 있었는데, 그 당시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을 도청의 국장급이나 고위직 간부급들,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선생님들이 사줬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 이러한 구매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풍토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의 지원은 확대됐지만, 민간의 문화생태계는 오히려 퇴화해버린 것이다. 

이제 문화예술섬 조성을 위해 지역사회의 '아트-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시대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개최되는 아트페어에 가서 주머니 사정에 맞게 작품 한 점을 구매하는 일, 지역의 소극장에서 벌이는 작은 공연장을 찾아서 티켓을 구매하고 작품을 관람하는 일,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역문화를 기록하고 발간하는 지역의 출판사나 지역작가들의 책자들을 한 권씩 사주는 일들이다. 적어도 공공기관장들이나 도청 시청의 고위급공무원들, 도 산하 기관장이나 간부급들, 지역사회의 알만한 기업인들이 나서서 직접 구입하고 관람하고 독서하는 일이다. 나를 살찌우면서 남을 돕는 일이니 일석이조의 버는 일 아닌가. 함께하면 더욱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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