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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뫼백일장 고등학교부 산문 부문 최우수] 마지막 편지제주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최시원
김승지 기자
입력 2017-06-05 (월) 18:04:13 | 승인 2017-06-05 (월) 18:27:30 | 최종수정 2017-06-05 (월) 18:08:25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산천초목이 푸르게 물들고, 새하얀 포말이 부서지던 그 때, 당신은 소년을 남자로 만드셨고, 저는 당신을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짧았던, 그러나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저와 당신의 여름은 추억의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저의 심장 곳곳에 박혀있습니다. 저는, 저는 기억합니다. 노랗게 만발한 유채꽃 사이를 지나가던 그대의 모습을. 드넓은 대양을 두려워하지 않고 멀리까지 나아가던 그대의 용감함을. 높디높은 창공을 바라보던 그대의 호기심을. 그 모든 것이 저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들이었습니다. 아아, 당신과 더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만약 내가 그때 라디오를 듣지 않았더라면, 아니, 제 발로 군부대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당신과 함께일 텐데.

그곳에 도착해 보니 나와 비슷한 무리들이 몇 있더군요. 높은 단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군인은 우릴더러 영웅이라고 말했습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이면서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일간지 1면에 떡하니 걸린 저와 제 전우들의 사진을 보고 당신은 안심하셨다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비록 그 직후에 항구에서 전차를 상륙시킬 때 쓴다는 커다란 배를 타고 저 멀리 북쪽으로 올라가 버렸기에 답장할 기회는 놓쳐버렸지만요. 저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뱃길에서 쓴 편지를 당신에게 부쳤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그 난리통에 부친 편지가 제 시간에 도착할 리 없다는 것을. 제 첫 편지는 계절을 넘어 가을이 되어서야 당신의 품에 도착했다고 들었습니다. 기나긴 시간동안 연락이 끊겨 당신의 속을 시커멓게 태워버렸던 일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당신의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편지를 받았을 때 저는 평양에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탄을 피하며 적들을 쏘아 맞추었는데, 그들 중 하나가 상당히 높으신 양반이더군요. 나는 그때 우리 사단장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났습니다. 가슴팍에 훈장도 달게 되었고요.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당신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중간만 하고 몸 성히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단장의 말에 의하면 "대한 육군의 자랑스러운 용사"인 저는, 당신의 간청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적의 탄환에 스러져간 전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고, 그래서 저는 항상 부대의 선봉에 서서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미군에게도 전해져서, 미국인 기자가 너의 사진을 찍어가게도 했습니다. 기억이 나는군요. 그대의 저는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당신에게 자랑질을 하였고, 당선을 기뻐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셨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받을 때면, 저는 기뻤지만 당신이 저를 걱정하는 마음이 문자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전달되었기에 슬프기도 하였습니다. 후회도 됩니다. 그때, 그때 멈추었어야 했는데, 당신의 충고를 새겨들었어야 했는데…….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것은 이북의 어느 마을에서였습니다. 내가 속한 소대는 마을을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적군이 숨기고 간 무기나 식량, 그리고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문서 등을 찾기 위해서였죠. 첫 번째 초가를 뒤진 다음 두 번째 초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어린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대여섯 명 정도가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기에 방 안은 상당히 비좁았습니다. 병사들은 하도 거지꼴이어서 사내인지 계집인지 구별이 어려운 아이를 보자 총구를 들이대고 경계했습니다. 아이는 두려운 듯 뒷짐을 진 채 뒷걸음질 쳤고요. 이를 말린 것은 소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무슨 짓이냐며 소대원들에게 총구를 내릴 것을 지시했고, 아이에게 미소 지으며 다가갔습니다. 불쌍한 소대장, 그는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미제 초콜릿을 꺼내들었지만, 아이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수류탄을 꺼내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소대장은 이 세상에 군화 한 짝과 철모 하나만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구에서 온 형식이와 경주에서 온 휘수도 그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 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분노한 우리 소대는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소대장과 형식이, 휘수는 저승길 동무가 많이 생겼다고 좋아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노와 증오, 살해와 복수로 점철된 끔찍한 폐허를 뒤로 하고, 우리는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비슷한 일이 수차례 더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손에 무고한 이들의 피를 묻혔고, 아아 그 죗값은 가볍지 않겠지요.

중공군이 내려와 한참 밀리고 있을 때, 북괴군 포로들이 혼란을 틈타 도망쳤습니다. 모두 세 놈이었죠. 저는 그 놈들을 모두 쏘아 맞힌 뒤 남아있는 포로들까지 모두 쓸어버렸습니다. 새로 부임한 소대장이 왜 그랬냐며 화를 냈지만, 저는 개의치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권총을 꺼내들고 저를 위협했습니다. '미치광이 전쟁광'이니 '전쟁범죄자'와 같은 말을 하면서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놈이라는 생각만 들 뿐입니다.
북괴군이나 중공군도 아닌 국군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자 분노한 저는 그의 권총을 뺏어 그를 쏘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머리에 구멍이 뚫려 힘없이 누워있는 소대장의 시체와 그 옆에 주저앉아있던 저를 발견한 중대장의 얼굴, 저를 끌고 가던 헌병대의 얼굴과 끌려가던 나를 멍하니 지켜보던 부대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며칠 전 사형을 선고받고 차디찬 감방 안에 앉아있습니다. 그대가 보내준 엽서는 잘 받았습니다. 고향에서 당신과 함께 봄의 아름다운 꽃들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을 정말 오래간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특히 마지막 사진, 당신이 고운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자 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당신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옵니다. 


쇠창살 너머로 밖을 보니 새순이 피고 있습니다. 겨울이 물러간 모양입니다. 고향 마을에도 봄이 왔겠지요. 하지만 저의 마음에는 차가운 눈보라만이 불고 있습니다. 아, 저 멀리서 교도관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차가운 발소리입니다. 아직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마음이 많지만 이제 그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그 모든 시간들은 저의 인생에서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교도관이 이 편지를 당신에게 부쳐줄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써 보았습니다. 봉투 안에 당신이 지금까지 나에게 부친 편지와 엽서를 동봉합니다. 삶이 끝나는 이 순간에, 당신을 기억합니다. 


김승지 기자  seungji07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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