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여자고등학교 1학년 황소은

탄생은 나의 죄명이다. 단 한 번도 원하지 않았지만 타인에 의해 부여된 목숨과 이름. 나는 2억분의 1의 확률로 실패했다. 삶은 고문이었고, 고해성사를 하며 온 방 안의 먼지를 들이마셔 마음으로 이끄는 일은 나에게 주어졌던 형벌이었다. 쌓인 먼지들은 마음을 자주 썩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된 마음들은 사라지는 법을 몰랐다.

세상에게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할 때면 이따금씩 먼지의 형상들이 눈에 어렸다.
어떤 날은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또 다른 날은 오랜 친구였지만 대체로는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이었다.

심해어처럼 바다 깊은 곳에 묶여 있던 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준 건 그들의 애정이었지만 그건 내가 미워지자 나를 나락으로 밀어 버리거나 먼지가 되어 새벽을 망가지게 했다.
그런 속절없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나는 나를 버렸고, 내가 버린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평생을 먼지 속에서 움츠렸다.

먼지는 나를 괴롭게 하다가 살고 싶게 하다가 유서를 쓰고 싶게 하다가
어느 날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가 뜬금없이 나타나 마음을 움켜쥐고 쓰리게 하다가 그렇게 평생을 삶 속에서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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