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논설위원

가축전염병 청정지역 사수에 총력을 쏟던 제주의 철통방역이 결국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전북 군산의 오골계 종계 농장에서 제주항과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을 통해 농장에 반입된 AI 바이러스가 지난 5일 고병원성(H5N8형)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가금류 농가는 물론 도민사회의 걱정이 적지 않다. 철새도래지가 아닌 가금류 사육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처음으로 발생, 축산업과 음식업 등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1년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가축전염병 청정지역 제주'를 위협한 고병원성 AI 발생은 폐사한 사실을 숨긴 채 잇속에 눈이 어두운 외부와 내부의 소탐대실에서 비롯된 인재라 할 수 있다. 

전북 군산 오골계 농장에서 시작돼 제주, 경기 파주, 경남 양산, 부산 기장 등 전국으로 확산된 고병원성 AI는 1차적으로 가축방역 의무를 수행해야 할 농가의 안이함이 화근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제주도의 역학 조사 결과 군산시 오골계 농장주는 사육중인 닭의 집단폐사가 발생했음에도 해당 지자체에 신고는커녕 쉬쉬하다가 인체 감염 위험이 높은 고병원성 AI의 전국 확산을 초래했다. 

문제의 군산 농장에서 오골계 중병아리 1000마리를 반입한 도내 애월읍 고성리·상귀리 사육농가 2곳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840마리 가운데 729마리가 집단 폐사했지만 방역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채 제주시·서귀포시 민속오일시장에서 160마리를 파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 농가의 도덕적 해이는 뒤늦은 AI 역학조사 및 차단방역으로  가축전염병 차단에 심혈을 기울였던 선량한 농가의 가금류 10만 마리 이상을 살처분하는 피해를 입혔다. 

농가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정부 방역당국의 허술한 인식도 문제다. 고병원성 AI가 지난 2014년 1월부터 2015년 9월까지 3차례 전국을 휩쓰는 등 국내에서도 계절을 가리지 않은채 발생하고, 중국·동남아 등 해외에서는 더운 여름철에도 상시 발생함에도 방역당국은 '겨울 전염병'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겨울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준 AI의 특별방역대책기간을 5월31일 종료, 평시체계로 전환했다가 5일 제주농가의 의심신고가 고병원성 판정을 받자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까지 올리는 등 뒷북 대응을 보였다. 

제주도의 방역체계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육지부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관련 조례에 따라 반입이 전면 금지되지만 평상시에는 이동경로 파악을 위해 가축운송차량만 신고하면 AI가 발생하지 않은 육지부의 가금류 반입이 가능,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고병원성 AI처럼 전국적으로 가금류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된 평상시에는 가축운송차량과 달리 차량에 실린 '살아 있는' 생닭 등 내용물은 신고하지 않은채 방역관의 검역 없이 차량·운전자 소독만으로도 반입할 수 있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됐다. 

제주항 방역업무를 수행하는 인력 및 전문성 부족도 문제다. 전북 군산에서 고병원성 AI가 의심된 오골계가 제주항을 통해 반입될 당시에도 방역관은 전문인력이 아닌 공무직과 기간제근로직 3명에 불과했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가축전염병 예방관리 측면에서 외부 유입 수단이 공·항만에 한정, 차단방역에 이점을 갖고 있지만 방역체계가 허술하면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면적이 좁은 탓에 농장이 밀집, 한곳에서만 가축전염병이 발생해도 축산업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가축전염병은 예고 없이 발생하기에 낡거나 허술한 방역체계는 또다른 위기를 부를 수밖에 없다. 제주가 수십년간 지켜온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새로운 질병의 전파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확산 방지와 함께 '새틀짜기' 수준의 가축전염병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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