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학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5394억원 규모의 2017년 제1회 추경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최대 규모다. 

추경은 예상치 못한 지출사유가 발생할 경우 편성한다. 그렇다면 2017년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많아진 것일까. 추경의 단골 사유인 민생현안이 갑자기 폭증한 것일까. 집행기관은 이번 추경이 주민불편 해소와 복지,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기조와 비교해 제주도 추경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버스공영화에 따른 운수종사자 인건비와 첨단지구에 들어서는 산학융합원 신축예산이 주를 이룬다. 

사회복지 정책의 경우 발달장애인 종합복지관 설계, 공공형 주간보호센터 신축, 해녀 지원과 보훈 수당 등은 매우 반갑고 가치 있는 의지이나, 이들 예산 100억원을 제외하면 새로울 것이 없다. 

민생현안 해결을 위한 쓰레기 대책 300억원과 대중교통 체계 개편 260억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추경규모에 대해 집행기관이 제시한 사유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번 추경규모가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추경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추경과 선거의 관련성을 지적한다. 정치적 지지 확보를 위해 선거 직전연도에 동원 가능한 모든 재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전국 17개 특별·광역단체의 선거 직전연도 추경규모는 평년의 두 배 규모에 달한다. 따라서 집행기관은 보편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제주도의 추경규모가 전국 16개 특별·광역단체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예산 투입 분야에 있어서도 지난 5년간 타 시도가 안전, 문화 및 관광, 복지에 투입할 때 제주도는 행정과 지역개발에 투입했다. 지출사유가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 분야와 중장기 계획에 따라 추진해야 할 분야에 추경예산을 집중 투입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추경으로만 편성된 사업의 집행률은 평균의 절반인 40%에 그치고 있다. 연내 집행을 못하고 대부분 이월되고 있는 것이다. 추경 편성 당시에는 급박한 지출사유가 발생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결산에서는 추경에 편성됐기 때문에 사업기간이 부족해 이월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그럼 이쯤에서 제주도 추경의 행태를 가늠할 수 있다. 바로 예상치 못한 지출사유가 발생하는 것보다 예상치 못한 초과세입을 지출하기 위해 추경을 편성했다고 보인다. 여기에 더해 순세계잉여금과 이월을 통해 선거 직전연도에 지출액 규모를 최대로 끌어올린다고 보인다. 제주도가 지방자치의 선도적 모델임을 자처하지만 재정운용은 매우 후진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보다 엄밀하게 들여다보면 이러한 후진적 행태는 4년 주기가 아닌 매년 반복되고 있다.

매년 추경의 불요불급한 예산편성이 결국 집행 부진으로 이어졌다. 집행 부진은 결산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집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결산에 임하는 집행기관의 자세는 안이하다. 

의회도 결산심의보다는 예산심의를 더 중요하게 다뤄왔고, 이 점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사업은 단순히 행정이 하는 일이 아니라 도민과의 약속이다. 도민과 한 약속의 예산집행 중요성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결산의 결과를 반드시 예산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러한 의회의 의지는 자칫 심의권의 강력한 행사로 이어져 도민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 예산전쟁의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재정운용의 악순환 고리를 언젠가는 끊어내야 하고, 그 역할은 주민이 직접 선출한 의회가 맡아야 한다. 의회가 집행기관에 대해 따끔한 경고를 줄 수 있도록 도민사회의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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