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제주 바다 이야기

희로애락 엮인 푸른 무대
신화에서 현실까지 연결
위로·치유·운명 아이콘
24일부터 해수욕장 개장

저기 '바다'다. 파도가 있어 바다다. 늘 옆에 있어 잘 알지 못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지만 부침 있고 변화 많은, 바다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은 바다와 같고, 우리네 인생도 그와 닮았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워 보이지만 높은 파도로 소중한 것을 한 번에 앗아가기도 하고, 잔잔한 잔물결이 천국을 외치게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은 희로애락이란 이름의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엮여 있는 푸른 색감의 옷감만 같다. 언제부턴가 계절 구분 없이 '저 바다에 누워' 물새가 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바다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바로 이 계절뿐이다.

#해수욕장 역사 60여년

제주 해수욕장이 하나 둘 '개장'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일정대로라면 이번 주말(24일) 금능으뜸원과 함덕서우봉, 협재, 이호테우, 홍조단괴 해수욕장이 '공식' 개장한다. 해변이란 단어에 비해 조금 덜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해수욕장'은 생애주기에 맞춰 볼 때 비교적 순조로운 시기다. 적어도 수상레저활동이 제한되고 안전요원이 배치된다. 해수욕장 주변 상점가도 밤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해가 지면 조용해졌던 해변 마을이 사람으로 북적인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 하나. 제주에 언제부터 해수욕장이 있었을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으로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불린 것은 부산 송도 해수욕장이다.

1913년 개장해 올해로 무려 10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주의 첫 해수욕장은 협재해수욕장이다. 1953년 8월 15일 문을 열었으니 대략 64년 정도 됐다.

그래도 제주는 4면이 바다인 섬이다. 해수욕장이란 이름을 쓰지 않더라도 그 이전에도 바다 없이는 못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알아서 바다를 썼다.설화와 전설, 신화에도 바다가 나온다.

제주 창조여신인 설문대할망이 바다를 건넜고, 고·양·부 삼성신화에도 벽랑국 공주가 각종 곡식 씨앗과 가축을 실은 상자와 바다를 건너온다.

고려시대 중국 송나라 사람인 호종단이 왕의 기운을 끊기 위해 제주 곳곳의 맥을 끊은 뒤 돌아가던 길 매 한 마리가 나타나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차귀도)도 있다.

'표해문학'이란 장르가 꽃을 피운 것도 바다가 있어 가능했다. 이쯤만 봐도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열림과 닫힘, 하늘과 대지를 잇는 거대한 문이나 마찬가지였다.

# 운명을 만들다

300여년 전 제주를 살펴 그린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1702)'에도 바다가 나온다. 분명 말을 타고, 가마에 올라 돌았던 길이지만 바다를 빼놓고는 제주를 다 설명하기 어려웠을 일이다. 물론 먼 바다를 그려 넣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병담범주(屛潭泛舟)'를 보면 '취병담(翠屛潭)'이라 하여 용연에서 뱃놀이 하는 모습을 그렸다. 영주12경으로 접근하면 휘영청 밝은 밤에 용연을 찾아와 밤 뱃놀이를 즐겨야(용연야범) 하지만 명승의 기운은 목사, 판관, 유배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 손꼽혔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용두암 부근에서 해녀들이 물질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전략적 지형인 연대 위치가 비교적 분명하게 그려진 것에 비해 비중은 적지만 당시에 해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가 됐다.

해녀의 존재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바뀌어도 바다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바다를 밭으로 여겨 일구고 사는 것은 어느 순간 업(業)을 넘어 숙명이 됐다. 심지어 광복 70여년 역사를 가로지르며 그 생명력을 유지한 유일무이한 존재로도 꼽힌다.

해녀의 삶 역시 바다로 설명된다. 누구나 순조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만 제주에 태어났다는 운명으로 물질을 배웠고, 평생을 의지하게 된다.

바다도 처음부터 '바다'가 된 것은 아니다.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냇물부터 만들어야 하고 그것이 지류를 만들고 그것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 줄기가 한데 모여들며 바다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불공평한 운명이란 바람이 파도를 만들고, 물살을 꺾어 방향을 바꾼다. 피해갈 수 없으니 조용히 맞서 나름의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이치를 보여준다.

# 새로운 세상의 시작으로

하얀 백사장, 짙푸른 물결에 몸을 맡겨도 그만이지만 조금 더 더듬어 들어가면 바다는 다양한 표정으로 많은 말을 한다.

소설가 한창훈이 불쑥 고향 섬으로 돌아가 쓴 에세이도 느낌이 좋다. 작가는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조언한다. "산은 뭔가 집중하게 하는 곳이다. 풀어져 있는 것을 강하게 매듭 짓는다. 하지만 바다는 반대다. 묶여 있는 것을 풀어준다"고 정의한다.

힘들게 바다까지 와서 물놀이 잠깐 하고 신선한 회를 사먹고 가는 것 말고 정말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조언한다.

생각해보면 한 마디 한 마디 틀린 말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땅만 쳐다보고 살았던 까닭에 푸른색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지 못했고, 그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몰랐다. 잔뜩 성이나 검게 변한 표정으로 으르렁 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토닥여주는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했던 바다일까. 뭐든지 다 받아주니 '바다'라 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 받아 달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 '시소'로 제주 여행이란 소원을 풀었던 근육병 장애를 가진 40대 가장은 죽음을 생각하고 찾아간 바다에서 삶의 의지를 찾는다.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고단한 삶이 끝나지 않을까 했지만 바다는 그런 그의 생각을 품고 고쳐서 돌려준다. "여기가 땅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바다로 가는 시작이네요"

영어로 'Sea' 대신 'Bada'라고 소리나는 데로 쓰고 읽으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Best(최고)'도 좋지만 'Better(최선)'을 목표로 살자는 교훈이다. '바다가 최고'라고 말하는 순간 멈춰야 할지 고민하게 되지만 '더 좋은' '더 나은'과 연결하면 보다 희망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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