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충남대학교 교수, 논설위원

10년 전쯤 민간경제교류단의 일원으로 호주의 서부 도시 퍼스를 찾았을 때 겪었던 일이다. 대표단 고위 인사가 공항 검색대에서 가져간 골프화 바닥에 마른 풀과 흙이 많이 끼어 있다는 지적에 한참 동안 옥신각신 거렸다. 숙소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하찮은 신발창 흙 찌꺼기 갖고 괜한 시비라는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일로 철저한 예방조치로 자신들의 주요 산업인 농·축산업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막겠다는 호주 당국의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제주공항 터미널에 설치된 방역발판과 에어샤워를 통과할 때마다 역시 청정지역이라 방역에 대한 관심이 높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골프장 내 위치한 호수를 찾는 철새들이 감염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게임을 마친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서는 입구에도 방역발판이 설치돼 있다. 

그런데 이번 제주지역에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유입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간 안도감이 근거가 없었구나 하는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쉽게 눈에 들어오는 공항의 방역 시설이 많은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낮추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방문객의 의복, 신발을 통해 병균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예방조치의 1차적 초점은 AI 확산의 매체인 가금류이다. 당연히 이들을 직접 운반하거나 사육 농장을 출입하는 차량들이 방역의 우선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중요한 방역활동은 항구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된다. 

남해안 곳곳에서 출발해 제주의 여러 항을 매일 출입하는 정기 여객선만 해도 10여 척에 이른다. 여기에 더해 화물선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과연 제주로 반입되는 가금류·가축과 운반 차량들이 제주공항의 방문객을 맞는 '에어사워'와 '방역발판'과 대등한 과정을 거치고 있을까 의문이 든다. 

검역은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고 빈틈없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100%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에 보듯이 일단 도내로 유입되면 확산을 막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국내에서 전염병 확산이 중단됐다는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해당 가금류 또는 가축의 도내 반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비용을 줄이는 방역대책이 될 것이다. 제주에서 필요한 육류를 육지의 산지에서 몇 시간이면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생닭을 반입해 전염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차제에 제주 지역에서 축산업을 어느 정도 해야 할지, 그리고 사육 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협소한 섬의 땅을 다양하게 쓰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와 직결된 첫 번째 이슈는 차지하고, 후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가축 전염병이 빈번한 것과 관련해서 발간한 최근 보고서에서 밀집 사육을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가 중국의 돼지 밀집 사육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관련 전염병 문제뿐만 아니라 고밀도 사육으로 인한 외상을 막기 위해 항생제가 과다하게 사용되며 부작용으로 변종 균 슈퍼버그가 생성돼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고기 소비를 통해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높아 밀집 사육 유인이 큰 제주 흑돼지들은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좀 비싸지만 동물복지 인증이 된 계란을 구매해 아껴 먹고 있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소비자의 선호와 정부의 정책으로 친환경 사육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제주의 축산 농가도 친환경 사육 방식을 도입하면 좋을 것이다. 좁게 가둬 키우는 것에 비해 산출 개체수가 떨어질지 모르나 친환경, 동물복지 상품이 높은 프리미엄을 구가하는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소비를 위해 사육되는 가축이라 하더라도 생육기간 편히 키우는 것이 생명체를 존중하는 자세일 것이다. 청정 제주의 내용과 이미지를 더 보강하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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