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 논설위원

어느덧 청문회 계절이 돌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바람에 대선이 치러졌고, 새 정부가 들어서니 고위 공직자들이 물갈이 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청문회 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를 했으나 '역시나'로 끝날 모양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그런 공직을 맡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치고 털어 먼지 안 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세히 살펴보면 청문회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병역 문제, 부정한 방법에 의한 부의 축적, 재산 형성이나 취학에 따르는 위장전입, 투기, 그리고 학자인 경우 논문 표절 등이다. 그 외에 전과 기록이 있으나 우리나라 정치 역사의 특수성으로 이 문제는 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청문회에서 병역 문제만큼 예민한 것은 없을 것 같다. 이회창씨 같은 경우는 대통령 당선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각자마다 특수한 사정이 있기는 하겠지만 지도층에서 병역 미필률이 높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위장전입 문제도 땅 투기를 위해서 한 것인지, 자녀들의 취학 때문에 그런 것인지에 따라 책임추궁을 당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필자도 위장전입은 아니지만, 주민등록법을 두 번이나 어긴 적이 있어 이 문제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은 전공의 시절 6개월 동안 파견을 나가면서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한 번은 집을  이사했는데 새로 다녀야 할 학교가 더 멀어 학교를 옮기지 않으려고 필자 혼자 주민등록을 옮긴 일이 있다. 부당한 이득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됐든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요즈음 들어 논문 표절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학교의 최대 가치가 진리탐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논문 표절은 학자로서는 삼가야 할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각 직업군마다 최고로 여기는 가치가 있다. 군인이라면 승리가, 의사라면 생명이, 법관이라며 공정성이 그런 것들이다. 군인이 일부러 전투에 지거나, 의사가 일부러 환자의 건강을 해치면 중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학자가 논문 표절을 한다는 것은 위장전입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청문회에서 다뤄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것은 사회공헌도를 따지는 일이다. 적어도 고위공직을 맡으려는 사람은 그동안 얼마나 사회에 공헌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말도 있듯이 얼마나 많이 희사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몇 %나 희사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얼마 전에 우리 고장에서도 청문회가 열렸을 때에 1억 연봉을 받으면서도 기부한 실적이 없다고 지적 받자, 한 달에 2만~3만원 기부했다고 대답해 쓴웃음을 자아낸 일이 있었다. 이것이 연세대학교 송복 명예교수께서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문제는 경제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며, 지도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것이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정말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위 지도층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권한만 행사하려 드는데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는 잊혀진 '국민교육헌장'에 쓰여진 대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참된 국민의 도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 되새겨봤으면 한다. 지금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은 요즈음 펼쳐지는 청문회를 보면서 나는 저런 경우에 저런 창피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한다. 그리해서 모두들 나이가 들었을 때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에서 권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자서전을 낼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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