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한 제주 건축유산이 또다시 행정당국의 무관심으로 사라졌다. 도내 건축학계에 따르면 지난 1963년 도내 첫 관광호텔로 문을 연 호텔하니크라운은 외벽 등 골격이 제주 현무암으로 축조됐고, 높이 솟은 굴뚝 형태의 구조물과 10.2m로 길게 뻗은 '포치'가 조화를 이루면서 지역성을 반영한 근대건축유산으로 가치가 높다. '포치'는 호텔 이용객의 비바람을 막기 위해 현관 바깥쪽으로 돌출된 지붕이 있는 모양이다. 

호텔하니크라운의 포치가 제주지역 근대 건축유산으로서의 보전 가치가 높지만 도로 확장공사로 훼손, 행정당국의 무지를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유산을 제대로 활용하면 제주 원도심의 매력도를 높여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음에도 제주시는 '철거 행정'의 민낯을 드러냈다. 포치를 잘라낸 제주시 관계자도 "호텔하니크라운의 근대 건축물 보존 가치를 모르고, 도로 및 인도 확장 공사의 지장물로 인식했다"고 해명했다.

건축유산을 없애버린 행정당국의 무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에는 제주행정 변천사를 보여주는 관덕정 인근의 옛 제주시청사가 소유주에 의해 철거되는 상황인데도 행정당국은 매입을 통한 보존은 커녕 사유재산권을 이유로 수수방관했다. 당시 제주도·제주시는 건축학계에서 요청한 옛 제주시청사의 근대문화유산 등록 등 활용방안도 외면, 문화재 파괴의 공범으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철거후 부지를 매입, 공공주차장으로 조성하는 '블랙 코미디'도 연출했다.

잇따른 건축유산 훼손은 역사·문화자원의 가치를 모르는 공직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근대 건축유산이 당시의 시대상과 지역민들의 삶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임에도 허술하게 관리함으로써 훼손을 부추기고 있다. 한번 훼손된 건축유산은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해도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기에 공직자의 문화 마인드를 향상시키는 등 재발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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