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수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논설위원

전국에 4차 산업혁명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대전시는 '4차 산업혁명특별시' 육성에, 경기도는 경기남부지역에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클러스터를, 광주는 '문화 융합형 4차산업 중심도시' 육성에 나서는 등 전국적으로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다양한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이에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오는 8월 설치하기로 하고, 주관부처를 미래부로 결정하며 추진체계를 일원화했다. 

이에 제주도는 4차 산업혁명의 국내·외 변화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국가 정책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 대비 제주 미래 유망산업 육성전략 수립'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6일 중간보고 결과, 연구진은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과의 기술융합으로 기존 농수축산업, 제조·서비스산업, 관광산업을 고도화하고,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전기차 전후방 연관산업, 에너지 신산업, 3D 프린팅 연관산업을 제시했다. 동시에 공공서비스 기반의 신산업 생태계 조성 방안과 융합형 창의인재 양성사업들을 제안했다. 그 결과 2030년까지 지역내총생산 45조원(현재의 3배) 달성, 1인당 도민소득 4만5000달러(현재의 1.5배) 달성, 신규 일자리 8000~1만명 창출을 목표로 잡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지자체들의 관심이 크다 보니, 벌써부터 서로 추진하는 산업 분야가 겹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가상현실(VR) 콘텐츠 개발은 경기·울산·경북이, 로봇산업육성은 경기와 대전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산업은 충남·광주·부산이, 자율주행차는 대전·대구·광주가 서로 거점도시가 되겠다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지자체간 관련 산업 선점을 위한 지나친 경쟁이 자칫 정치권과 연결돼 과열되거나, 중복 지원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미래 지역 경쟁력을 좌우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관련 핵심기술과 접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지역에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지만, 전통 제조업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결코 안전하지 않다. 디지털 생산비용이 인간의 노동비용보다 저렴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의 특성상, 물리적으로 고립된 섬이라는 특성이 더 이상 산업 발전에 제약요인이 아니다. 여기에 제주도민들의 정체성으로 내재돼 있는 4차 산업혁명 핵심 역량을 탐라국 건국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협업과 융합의 정신이다.

유일 시조에 의한 일반적인 건국신화와 달리, 탐라국의 시조인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의 삼신인(三神人)은 지금부터 4300여년 전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났다. 수렵생활을 하며 평화롭게 지내던 삼신인은, 배를 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를 각자 배필로 맞이했다. 이때 그들이 가져온 오곡의 씨앗과 가축으로 농업과 목축업을 시작했고, 점차 제 몫의 땅이 필요하게 됐다. 

이때 이들 삼신인은 각자 활을 쏴 화살이 떨어진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세 곳을 중심으로 각자 능력과 특장점을 살린 협업을 통해 씨족사회에서 부족국가로 발전했다. 또한 당시 세 공주로 대표되는 외부세력의 유입을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여기며 혼인지(婚姻池)에서 융합의 시작을 알렸다. 해외 선진문명을 주도적으로 수용하고 융합해 수렵문화에 머물던 탐라국에 농경문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제 제주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전세계인에게 열려있는 국제자유도시, 청정한 자연환경자원과 국내 최고수준의 관광인프라, 신산업 테스트베드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제 우리 선조들이 탐라국을 열었던 지혜를 되살려,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과 협업의 정신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제주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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