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논설위원

지난 6월 10일 "제주서예문인화인의날" 행사에 참여했다. 제주 서예인들 300여명이 미협, 서협, 서가협 등의 계파나 문중을 초월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모여진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제주에서 서예나 문인화를 즐기는 회원들이 제주에 유배왔던 서예인이시며 한국 서예계의 서성이신 추사 김정희선생의 제주유배생활을 되새겨 보는 마음으로 선생의 탄신일인 6월 3일을 기념함과 아울러 제주서예문인화인들로 하여금 화합된 모습으로 제주서화예술의 진흥에 진력함과 더불어 작가마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데 활력소가 되고자 하여 제주서예문인화총연합회의 발의로 "제주서예문인화인의날"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국제적으로 서예활동을 하고 계시는 초당 이무호 선생을 모시고 "세계 서예의 흐름 방향"에 대한 강연과 제주특별자치도서예문인화총연합회 회원 서예작품 전시에 이어 서예문인화인의 날 행사를 진행했는데 여기에서는 2017년도 제주작가 중 뛰어난 작품을 출품한 작가를 선정하여 "제주서예문인화작가상"을 수여함과 아울러 제주 서예계에 공이 많은 원로작가 중 작품과 인품이 뛰어난 작가를 선정하여 "원로작가상"을 수여했다. 참으로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자리였다.

아침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땐 문득 떠오르는 시상이나 명언 명구가 아른거린다. 좋은 문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선택하여 일필휘지하는 서예인들의 마음은 평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마다 자신이 쓰는 작품에는 작가의 인품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여기인(書如其人) 즉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옛 선인들의 좋은 문장을 읽다보니 채근담 구절이 생각난다. "부싯돌 불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툰들 그 시간이 얼마나 되며(石火光中 爭長競短 幾何光陰) 달팽이 뿔 위에서 자웅을 겨룬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蝸牛角上 較雌論雄 許大世界)" 이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 북한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리고, 우리는 북한의 무력도발을 원천봉쇄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어서 예술인들이 보는 눈으로는 그 자웅을 겨루고 있는 국제정세가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서예는 그 서(書)자에서 보듯이 "다섯 손가락으로 말하는 것" 다시 말해서 '글씨는 다섯 손가락을 통하여 붓으로써 심중을 토로하는 것'이란해석이다. 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붓을 잡고 직접 글씨를 쓸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양적인 분위기가 마련된 자리에서는 직접 붓을 들고 글씨를 써야 할 때도 허다하다. 그러한 자리에서 자기 이름 석자를 멋있게 쓴다든가 간단한 좌우명을 감동스럽게 쓴다는 것은 자신의 인품까지도 드러내는 즉 자신을 상징하는 요소가 담겨져 있기에 평소 정성들여 글씨를 쓰는 연습과 습관을 들여 두는 것도 중요할 듯 싶다. 

서예는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기 위한 기술이나 기교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의 인격함양에 힘써야 함을 말하는 것임에 우리의 일상에서는 말이 먼저고 글이 나중이지만 말은 곧 글이 되는 것이고 글은 또한 글자로 이루어지므로 글자 혹은 문자의 역할은 말이나 생각과 같이 우리 생활에서 매우 큰 것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에서 문장(詩) 글씨(書) 그림(畵)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특히 문장이나 서예와 회화가 고도의 철학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文如其人, 書如其人, 畵如其人이란 말이 있다.

글씨를 감상해 보면 사람마다 독특한 자기 필체가 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의 참된 의미는 그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덕 등을 총칭하는 의미라 하겠다.   글씨를 아무리 잘 써도 사람의 됨됨이가 되어 있지 못하면 주옥같은 글씨를 써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달팽이 뿔 위(蝸牛角上)같은 좁은 세상에서도 다 같이 함께하는 서예인 이기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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