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오늘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추진하는 제주비엔날레의 프로그램 알뜨르프로젝트 밭두렁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알뜨르를 찾았다. 필자는 알뜨르와는 꽤 인연이 있는 셈인데, 그것은 2010년에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알뜨르 격납고 설치미술전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를 개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대정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섬 서부지역의 중심지다. 그러한 역사의 시간은 오랜 만큼의 기억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제주의 역사는 대정지역에 수많은 문화유산과 유적들을 남기고 있다. 

특히 외세의 침탈이 유독 잦았던 제주역사의 고비마다 섬에 낙인처럼 찍혀 남은 역사의 흔적들은 대정지역을 제주역사의 타임캡슐로 만들고 말았다. 선사시대의 유적인 상모리 선사유적지, 조선시대 삼읍체제의 흔적인 대정읍성과 대정향교, 돌하르방, 추사로 상징되는 500년 유배의 역사, 일제 강점기 난징폭격과 패망 직전 펼쳐진 '결7호 작전'의 산물인 알뜨르 지역의 항공기지 활주로, 통신시설 등 관련시설과 20여 기의 제로센 격납고들, 곳곳에 남겨진 4.3관련 유적지들, 한국전쟁기간 이곳에 설치되었던 중공군 포로수용소 흔적, 한국전쟁 제1훈련소 관련 유적들, 태권도 발상탑 등 알뜨르의 역사유적은 이루 하나하나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이러한 유적들 중 알뜨르 평원의 일본군항공기지 유적, 그 중에서도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훌륭한 유적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유적에 소위 '삘'이 꽂혔고, 역사와 유적, 기억과 기념의 씨줄날줄로 엮어 전시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 당시 전시회의 인연으로 이번 비엔날레의 사이트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의 작업이 나름대로 알뜨르 격납고의 예술적 활용의 선구적 활동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쁜마음을 감출 수 없다, 왜냐하면 알뜨르의 격남고들은 국내 최대규모의 역사유적이나 비슷한 격납고들은 그 자체로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격납고 각각에 콘텐츠를 넣어준다면 이 공간들은 훌륭한 이프라이자 그 자체로 군락 전체가 알뜨르의 콘텐츠로 동시에 살아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시를 넘어서서 알뜨르 격납고 군락의 이러한 가치를 여러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도 목적이었으니 이번 비엔날레 사이트로 지목되고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적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유적을 통해 인간이 그것을 읽어낼 때 유적은 비로소 자기의 역사를 증거한다. 

필자가 알뜨르에서 설치전시를 할 때 일군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소형버스로 자주 방문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전시관람이 목적이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찬란했던 과거를 증명하는 유적을 보러 왔던 것이다. 필자는 충격이었다. 그동안 이곳을 찾았던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이 유적은 전범국가 일본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기억의 공간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군국주의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향수의 우물이었던 셈이다. 

이제 이곳에 평화의 작품들이 전시되면 알뜨르는 제대로 활용되게 될 것이다. 비엔날레와 함께 알뜨르는 진정 평화의 유적으로 새롭게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도민들도 알뜨르를 다시 보자. 아시아의 각축과 밝지 않은 위기의 시대에 알뜨르는 이제 새로운 평화의 기지로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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