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밤이 되면 아내와 나는 환자를 두고 숙소를 찾아나서야 했다. 토요일에는 광화문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그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따라 외치다가 다시 끼리끼리 잡담을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잠깐 산책 나온 사람들처럼 즐거워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촛불 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두 달을 보내다가 병원을 옮겼다. 

정부가 바뀌면서 '촛불'을 혁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취임식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라고 말했다. 혁명의 도구? 섬뜩한 기분이 들지만 어쩌랴. 힘없는 백성으로서는 그 말이 헌법 위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으니. 

국무총리께서 촛불시위를 '혁명'이라고 하시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정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1758~1794)는 "모든 프랑스 아동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며 우유 값을 내리라고 했다. 자신들에게 정권을 안겨준 혁명세력에 대한 보답인 셈. 우유 값은 잠시 떨어졌다가 폭등했다. 농민들이 젖소 사육을 포기하고 육우(肉牛)로 내다팔았기 때문이다. '반값우유'로는 비싼 건초 값을 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건초 값을 내리라고 하자 건초생산업자들은 건초를 불태워버렸다. 우유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서민을 위한 반값우유 정책이 결국 우유 값만 올려놓았다. 그 후 로베스피에르가 어떻게 됐는지는 여기서 말하지 말자. 

마오쩌둥(1893~1976)은 쓰촨성(四川省)의 농촌마을에서 벼이삭을 쪼아 먹는 참새들을 보고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새박멸을 지시했다. 그 명령을 누가 감히 거역하랴. 중국 전역에서 무려 2억1천여마리의 참새가 박멸됐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쌀 수확량이 늘기는커녕 갈수록 줄어들었고, 1958년부터 3년 사이에 4천여만 명이 굶어죽는 대기근(大飢饉) 사태가 났다.

참새가 줄어드니 해충들이 제 세상 만난 듯이 벼의 잎과 줄기를 모조리 갉아먹은 것이다. 놀란 마오쩌둥이 참새박멸작전을 중단하고 소련 연해주(淵海州)의 참새 20만 마리를 긴급 수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상황을 되돌리기는 역부족. 이 실패로 마오쩌둥은 권력 2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5년간 178조원을 투입하는 새 정부의 100대 과제 제1호가 '적폐청산'이란다. 통합과 경쟁을 통해서 시너지효과를 올려도 모자랄 판에 적폐청산이라니? 포용적이고 생산적인 발상이 아쉽다. 

'원전 폐기',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제로', '공무원 증원', '사드 환경평가' 등등 환호하는 지지층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창의적인 노력 대신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일자리 복지에 기대게 된다든가, 최저임금 대폭 상향에 못 견딘 영세상공인들이 차라리 알바를 하겠다며 폐업한다면 원치 않는 '풍선효과'가 생길 것이다. 국방문제도 불안하다. 반미시민단체와 일부 성주주민들의 사드기지 진입차량 불법검문과 전자파 측정계획 반대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니 이런 게 '나라다운 나라'인가. 주제 넘는 말이지만 대통령의 대외발언도 충분한 사전검토를 거치고 신중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직접 제의한 '평창올림픽 남북공동개최'가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다"는, 장욱 북한 IOC위원의 한마디로 머쓱하게 돼 버린 일은 얼마나 씁쓸했는가.

정권은 짧지만 국가는 영원해야 한다. 5년만을 생각하지 말고, 보다 길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이미 내놓은 정책도 찬.반 전문가들과 진지한 토론을 거치면서 보완하고 수정해 줬으면 좋겠다. 훗날 부강한 나라의 기초를 쌓은 대통령으로, '나만 옳다는 고집'을 버리고 야당과 국민들의 반대의견을 받아들인 덕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노라고 뿌듯해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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