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편집부국장 대우

2010년 제4회 4·3평화마당극제에 참가한 유닛극단 항로는 미리 준비했던 공연 대신 영상과 공연의상 하나를 무대에 올렸다. 지금을 기준으로 25년 전 '나는 조선인이다'며 오사카 연극판에 뛰어들어 한국어로 공연을 하는 극단 메이를 만든 재일조선인 3세 김철의씨의 메시지였다. 조선적(朝鮮籍)을 이유로 두 번째 '입국 거부'를 당한데 대해 그는 "1세대 할아버지나 2세대 아버지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아픔이겠지만 인정하기 어렵다. 죽어서 뼈 한 조각으로 남아도 제주 땅에 오겠다고 했다"는 말에는 아픔이 묻어났다. 이런 그의 사연은 놀이패 한라산의 '현해탄의 새'(2011)와 다큐멘터리 영화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2014)를 통해 알려졌지만 아직 그는 제주 무대에 서지 못했다.

'조선적'과 관련한 기억은 사실 더 많다. 2005년에는 '화산도'를 쓴 김석범 소설가의 입국 거부가 논란이 됐었다. 지난 2015년에는 4·3 광풍을 피해 밀항한 후 남쪽에 두고 온 딸과 북을 선택한 아들들 중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 채 살아온 해녀 양의헌 할머니가 세상사만큼 무거웠던 눈꺼풀을 내려놓았다.

조선적은 해방 직후인 1947년 일본 정부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을 외국인으로 등록시키면서 편의상 '조선'국적을 표기하게 했던 데서 비롯됐다. 외국인 등록상 기호에 불과하지만 현실은 아프다. 일본에서는 사실상 무국적자로 분류돼 아무런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한국은 빡빡한 정치적 편견으로 그들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렇게 타자화한 이들의 수만 3만 명이 넘는다. 이중 상당수의 고향은 제주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 만큼이나 이런 저런 주문이 늘고 있다. 조선적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시민단체 위주로 결성된 '조선적 재일동포 입국실현을 위한 모임'은 이달 11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산하 국민인수위원회에 '조선적 재일동포의 자유로운 입국을 허용하라'는 내용의 정책제안을 했다. 이미 지난 3월 제주 출신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강창일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갑)이 무국적 재외동포에 대해 여행증명서의 발급 및 재발급을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여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외교부 등의 자료를 보면 노무현 정부 시기 100%에 달하던 조선적 재일동포 여행증명서 발급률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43.8%로 급락한 뒤 박근혜 정부이던 지난해 8월에는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인 34.6%까지 하락했다. 물론 시대 흐름이나 필요에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있고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 같은 숫자는 잔인하다. 명확하게 거부사유를 들었던 것도 '반국가적 발언 및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애매한 논리가 전부였고 그 마저도 듣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우 김철의가 이끄는 극단 메이의 일본 배우들은 바지 저고리를 입고 서툴지만 한국어로 공연을 한다. 아버지.할아버지 세대가 살아온 것들을 기억하려는 노력에 동화된 결과다.

제주도가 자랑하는 평화의 섬이니 문화도시니 하는 타이틀만 늘어놔도 이들이 "거절당하는 것에도 면역이 생긴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2021년 상주인구 70만 시대'계획은 이제 80만명 까지 내다보는 상황이 됐고, 결혼이주민과 북한 이탈 주민까지 포용하는 시책도 흔해졌다. 무사증입국 대상 국가 확대에 이어 9월부터는 최종 목적지가 제주일 때 동남아 단체관광객의 최장 10일 체류가 가능해진다. 그런데도 아직 조선적 제주인들은 죽기 전 고향에서 조상 성묘를 하는 것이 평생의 한(恨)이자 소원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도 차별이자 폭력이다. 제주를 향한 그들의 소원에 이제는 대답을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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