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보전조정위원·시인·논설위원

결핍은 보자라서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상황이다. 100%의 결핍이든, 2%의 결핍이든 결핍으로 인한 현상은 괴로운 사실이며 쓰디쓴 진실을 동반한다.

세계육상대회에 나가서 0.몇 % 우월성 덕분으로 명예와 부를 누리는 경우와 0.몇 % 늦다고 만년 2인자로 선수생활을 하다가 마감을 한 육상선수도 수영선수도 있다.

세계대회가 많으므로 한 번 쯤은 일등 자리를 양보할 수도 있다. 능력은 승패에서 승자나 패자 쪽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도 연출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한 번 져주었는데 언론에선 불세출의 영웅이 쓰러졌다느니 기록은 깨어지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대서특필하므로 승패조작이 어렵다.

어떤 대회에서 5명의 심사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20%의 심사권한을 가진 거다.

갑자기 문자가 오기를, 5번 째 선수가 자신이 가르친 제자라고 하면서 선처를 바란다는 지인의 부탁이 왔다. 관객도 선수도 심사자도 객관적인 평가가 있을 것이므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하게도 5번 째 선수가 최종심까지 올라와서 금상 은상 동상 중에 하나를 받게 되었는데 우열을 논하기 어려워서 안으로 굽는 팔이라고 20%의 권한을 행사했고 그 선수가 금상을 받았다. 그랬는데 행사가 끝나고 지인은 나더러 금상을 받을 만큼 잘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기고가 만장했다. 구역질이 났지만 대가를 바랐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참을 수밖에. 그래서 깨우쳤다. 왕이, 사장이, 가장이, 보디가드의 표정이 날카롭고 냉정하게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왕이 실실 웃으면서 국사를 논하면 간신의 무리가 날 뛸 것이므로 근엄한 표정으로 접근을 막고 공명정대한 상벌을 위하여 위엄을 유지한 거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실감한 적도 있다. 우여곡절로 단체장을 자리를 맡게 되었는데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런데 일등공신이라고 자처하면서 대리청정을 하겠다고 나대자 설치지 말라고 했더니 의리를 모른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남을 돕는다는 헌신이나, 은공을 갚음이나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깨우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마냥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럭저럭 시를 오래 쓰다보니까 문학 강의도 하게 되어 제자도 수십 명에 이른다. 그래서 등단하도록 이끌려고 마음에 없는 칭찬도 하게 된다. 그것이 동기유발이 되고 내공이 쌓여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스스로 능력이 탁월한 줄로 아는 오만이 문제다. 이걸 청출어람이라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드물게나마 청출어람도 있긴 하다.

그래서 명강사들은 자신의 강의 수준을 70%정도만 보여주다가 청강생들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80%까지는 진면목을 보여준다. 나머지 20%는 비장의 자산인 거다. 청강생의 개인적인 집요한 요구에 감동하여 전부 전수하였을 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배신을 때릴 것을 염두에 둔 전략인 거다.

작사를 부탁한 경우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들어주었다. 나름 반기면 추가로 고친 작품을 드리려고 했는데 성의 없는 대답이 왔다. 그래서 깊이 사귈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짚신을 삼아서 장날마다 따로 팔았는데 아버지는 잘 팔았다. 아들이 보기에는 어느 짚신이나 같음에도 나타난 현상이 달랐으니 어떻게 팔았는지를 물었지만 나중에야 세상을 하직하면서 '털털털'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 만든 짚신을 다시 손칼로 잘 다듬어서 2%의 차별성을 획득한 거다. 이 경우도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오만을 염려했음이다.

여자가 처음으로 남자를 만나러 갈 때 두렵고 설렘도 커서 친구를 동행하기도 한다. 다만 자신보다 못 생겨야 한다는 상식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남자의 눈에 두 여자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단체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하면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최고가 되는 지름길이므로 그 단체나 조직을 와해시킬 위험이 크므로 격리당할 위기를 감지해야 한다. 90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그것도 아주 쉽게 해치워버리면 90명의 존재가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천재는 고독하다.

발명왕 에디슨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라고 했는데 영감이 없으면 땀만 소나기로 흘려도 발명은 말짱 황인 거다. 살다보면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나처럼 말 한 마디 잘 못해서 평생 친구를 읽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이로워야 하므로 지금보다 잘못하면 단절하겠다는 내심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경우도 2% 이상의 결핍으로 비롯되는 고통이다. 결국은 세월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므로 아무리 몸부림쳐도 저 세상으로 가야하는 절대 결핍, 2%의 애증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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