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커스>여름철 폭염 대책 현주소는

혼자사는 노인들이 폭염 때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이고 있다.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와 부채질에 의지한 채 그저 여름이 빨리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은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달 31일 김미순 할머니가 무더위 속 부채질을 하고 있는 모습. 고경호 기자

도내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대상자 4100명
연일 지속되는 무더위 선풍기·부채에 의존
생활관리사 단 167명 1인 당 24.5명 돌봐

혼자사는 노인들이 폭염 때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이고 있다.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와 부채질에 의지한 채 그저 여름이 빨리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들의 고단한 여름나기를 옆에서 지켜보는 생활관리사들도 끝 모를 무더위가 야속하기만 하다. 폭염 경보가 내려질 때마다 노인들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처우는 서글프기 때문이다.

△"바람 통하는 집 소원"

폭염 경보가 내려진 지난달 31일 오후 1시. 3층짜리 단독 주택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허름한 철문을 열자 김미순 할머니(83·가명)가 안방으로 들어오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선풍기 앞자리에 방석을 내어준 김 할머니는 땀으로 젖은 이마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힘없는 부채질만 연신 해댔다.

김 할머니는 선풍기에서 나오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무안했던지 "집 자체가 건물들에 둘러 쌓여있어서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만 나온다"며 "한 낮에는 그늘을 찾아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다리가 말썽이라 집에만 있다"고 얘기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김 할머니는 제주시자원봉사센터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고위험' 혼자사는 노인이다.

위암으로 여러차례 수술을 받았는데다 골다골증에 류마티스성 관절염까지 앓고 있는 김 할머니는 인근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으러 갈 때 빼고는 늘 집안에만 있다.

함께 동행한 변순옥 생활관리사는 "김 할머니는 무더운 집 안에 갇힌 채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를 맨 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것"이라며 "밖에 있는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온 몸이 땀으로 젖지만 전기세가 아까워 선풍기도 제대로 못 틀고 지내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사람 사는 게 아닌 것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얼른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바람 잘 통하는 집에서 단 며칠이라도 살아보는게 내 남은 인생의 유일한 소원이다"고 토로했다.

△한 사람당 24.5명 '진땀'

생활관리사들은 혼자사는 노인들에게 가족과도 다름없지만 처우는 열악하다.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 혼자사는 노인은 모두 2만4304명으로 이 중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다른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대상자는 4100명(제주시 2650명, 서귀포시 1450명)에 이른다.

반면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는 '생활관리사'는 단 167명(제주시 108명, 서귀포시 59명)으로 한 사람당 평균 24.5명을 돌보고 있다.

정기적인 방문·전화통화와 별도로 폭염 특보가 발효될 때마다 담당하고 있는 혼자사는 노인 수십 가구를 일일이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한 생활관리사는 "폭염 특보가 내려지면 야외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데 생활관리사들은 오히려 혼자사는 노인들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특히 방문했을 때 집에 안 계시거나 전화를 안 받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동네를 샅샅이 돌아다니느라 정해진 근무 시간을 넘기는 날도 다반사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관계자는 "제주 역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만큼 혼자사는 노인 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생활관리사들의 처우 개선과 혼자사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 질 향상을 위해서는 인력 증원 등 행정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김종래 팀장

인터뷰 / 김종래 제주시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팀장

안전망 믿고 방치 관심 절실
여름물품·식사 지원 등 필요

"혼자사는 노인들에 대한 안전망이 강화될수록 자식 등 가족들의 관심은 더욱 떨어진다. 노인복지의 모순을 해소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다"

김종래 제주시 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팀장은 "매년 여름마다 센터와 생활관리사들은 비상이다. 혼자사는 노인들은 무더운 날씨로 기력이 쇠해지면 음식까지 거르기 때문"이라며 "선풍기와 여름 이불, 모기장 등 물품들은 물론 도시락과 반찬 등 식사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혼자사는 노인들의 동작과 화재, 가스유출 등을 감지하는 응급 안전 알림 서비스 사업이 도입됐지만 예산 부족으로 5년동안 240가구에 설치하는 데 그쳤다"며 "생활관리사 증원과 혼자사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한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비 지원 등 행정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혼자사는 노인들의 복지 질 강화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해당 가족들의 관심이 우선돼야 한다. 독거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확대될수록 가족들은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겠지' '생활관리사들이 방문하니깐 괜찮겠지' 등 더욱 무관심해진다"며 "복지 안전망을 믿고 부모를 방치하는 가족들이 혼자사는 노인들의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각 마을 경로당에 무더위쉼터가 마련됐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혼자사는 노인들은 상대적인 위화감 때문에 어울리지 못하거나 아예 발길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혼자사는 노인들에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도 더욱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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