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호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우리나라 24절기 풍습은 예측 가능한 날씨를 토대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근래 들어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24절기의 풍습은커녕 내일 날씨도 예측이 힘들어 가뜩이나 힘들어진 농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올해에도 마른장마와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해 지역별로 강우량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다,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 현상으로 인해 농작물뿐만 아니라 사람들도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제주의 여름은 농촌에서는 월동채소로 불리는 당근과 양배추, 월동 무, 브로콜리 등 채소류 파종이 시작되는 시기다. 10월까지 파종이 완료되면 수확시기까지 쉼 없는 재배관리에 들어가게된다.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생각나는 부분으로 부지런한 개미인 우리 농업인들의 해피엔딩을 예상해 보지만 어렵사리 재배한 월동채소의 가격은 그해 기상과 국내 외의 작황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농업인의 노력에 관계없이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과거에는 제주에서만 월동채소를 생산할 수 있어서 걱정 없이 유통할 수 있는 특화성이 있었지만 현재는 재배기술과 품종개량에 따라 육지부에서도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저장기술의 발달과 수입물량 증가로 제주의 특화성이 상당부분 희석되면서 수급불균형에 따른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즉, 최남단이라는 특화성은 사라지고, 도서지역으로 물류비와 심각한 인력난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점은 제주 월동채소에 빨간불이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물류 선진화라는 명목 하에 부피가 크고 단가가 낮은 월동무를 비롯한 채소류에 대해서도 소포장과 하차경매를 의무화함에 따라 농업인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제주지역만 제외되고 있었던 해상물류비 지원의 경우 농업인들을 두 번 울리는 불평등 사례였다.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감귤육성 지원 및 제주농산물 해상운송물류비 지원이 포함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지원대상과 지원단가 등 농업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현실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올해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는 하차경매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겨울철 신선채소의 공급은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국가차원의 문제인 만큼 정부가 나서 제주 월동채소를 관리하고, 생산농가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재원의 한계로 실현가능성은 미미하지만, 제주 월동채소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채소류의 수급안정은 농업인의 지속가능한 영농환경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을 지켜주고, 도농 균형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관련 정책을 살펴보면 월동채소의 생산과 판매가 각 개별농가의 몫이라는 기본인식을 가지고 접근을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월동채소의 수급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농가만이 몫은 아니다. 유통주체로 책임지고 있는 농협도 농업인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계약재배 확대와 일정가격을 보장하는 수급안정 제도를 활용하는 등 생산자단체로서의 기능과 역할도 필요하다. 행정도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농업인 신뢰가 필수다. 메아리가 되지 않기 위해 농업인이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가까이에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 월동채소의 국가적 가치를 평가하고,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다. 날씨는 인력으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지만, 품목과 재배면적의 선택, 출하조정, 보험의 가입 등 사람이 어찌 해볼 여력도 있는 만큼 하늘만 쳐다볼 필요는 없다. 부지런한 개미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이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뜨거운 여름,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농업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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