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충남대학교 교수·논설위원

"Paper, or plastic?" 이 말은 미국의 큰 슈퍼마켓에서 계산대 직원들이 고객이 구입한 물건을 포장하기 위해 종이봉투와 일회용 플라스틱봉투 중 뭘 원하는지 묻는 말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쯤 장을 보기 때문에 구입물품의 양이 많아 한 번에 큰 봉투 서너 개를 채우기가 보통이다.  

필자가 살았던 미국 켈리포니아주에서는 이제 이 질문이 사라졌다. 과거 포장용 봉투가 무료로 제공되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매장에서 종이봉투는 유료화, 일회용 플라스틱 봉투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십여 년 전에도 재사용 쇼핑백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것이 모든 슈퍼마켓 이용자들에게 강제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제주가 각종 폐기물 및 재활용품 배출 관련 변화를 시도하며 주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방문객과 상주인구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늘자 작은 규모의 인구에 맞추어진 시설이나 처리 용량이 조만간 모자라게 될 처지가 되자 서둘러 해결방안을 모색하며 겪는 일이다. 청정을 핵심 가치로 설정하면서 이제 지역의 폐기물·하수문제는 과거보다 더 심각해졌는데 주민의 생활 습관 변화는 더디다. 

과거 폐기물·하수 문제는 일부 전문가와 행정 실무자들의 관심분야였다. 하지만 그새 이 문제가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 괴물처럼 스멀스멀 그 몸집이 커지며 지역의 앞날을좌지우지할 난제로 자리매김 했다.  

섬 전역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사용되고 있거나 보호되고 있어 지표면에 폐기물을 쌓는 것이 어렵다. 지하수가 큰 자원이니 땅에 묻기도 여의치 않고, 바다에 버리는 해결방안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만약 늘어나는 폐기물·하수를 어떻게 할지 처리방안이 먼저 준비되지 않으면 상주인구 및 방문객 증가를 제한해야 될지 모른다, 이제 폐기물 처리 문제는 향후 제주가 어떻게 변모할지에 결정적인 제약요인이다. 

무조건 새로운 개발을 동결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개발 사업에는 그 시설로 인해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총량이 느는 것을 막아야하는 추가적인 부담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고려가 공공, 민간의 구분 없이 모든 개발 사업에 필수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기존 처리용량에 부담을 더하지 않도록 자체 폐기물 처리 시설을 구축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빗물을 사용하고 하수발생을줄이는 설비, 음식 폐기물의 콤포스트 처리를 통한 자원화, 그리고 배출 하수를 처리하는 시설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도록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소요되는 전력을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두 번째로 폐기물 배출권의 거래를 가능하게 해 신규 시설로 인해 발생하는 물량만큼 기존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럽에서 활성화되었고, 국내에서도 제도가 도입된 탄소배출권을 거래 제도와 비슷한 것이다. 물론 이런 방안은 예상되는 폐기물 배출에 대한 정확한 추정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 시간을 두고 준비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효과가 큰 방안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도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것이 최상의 대책이다. 그 시작은 일상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자신과 이웃들이 재활용 쇼핑백을 사용하는 것이 작은 행동일지 모르나 확산되며 일회용 플라스틱 봉지의 사용을 크게 줄이고, 지역의 폐기물 문제를 푸는 첫 걸음이 된다. 방문객들도 폐기물 줄이기에 적극적인 주민들의 생활 습관을 접하면 쓰레기 버리는 일이나 재활용품의 처리에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한국보다 인구는 적으나 면적이 약 4배나 넓은 켈리포니아가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려 과감한 조치를 취한 것을 상기하면, 훨씬 좁고 사람이 많은 곳을 청정하게 유지하려는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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