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료기관 수술 시 보호자동의서 요구
행정도 '개입 어렵다' 이유 대책 마련 뒷짐

평소 담석증과 폐질환을 앓고 있던 김철수 할아버지(가명·76)는 지난 4월 병세가 악화돼 제주시내 종합병원을 방문했지만 수술을 받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가족과의 연락이 아예 끊긴 무연고 홀몸노인으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 줄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김모씨는 "결국 김 할아버지는 입원 후 40일 만에 환자 본인이 동의서를 작성해도 된다는 병원으로 이송되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의 연락이 끊긴 무연고 혼자사는 노인들이 서럽게 병마와 싸우고 있다.

수술을 받고 싶어도 보호자 부재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다 행정당국마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의료업계 등에 따르면 수술동의서는 수술 목적과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 등을 환자 혹은 보호자에게 설명한 후 수술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위한 것으로, 사후 발생되는 분쟁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작성되고 있다.

문제는 수술동의서 작성은 의료법 등에 명시되지 않는 등 의무사항이 아닌데도 일부 의료기관에서 무연고 홀몸노인들에게 보호자의 수술동의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시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관계자는 "수술동의서 때문에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혼자사는 노인들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사망, 병원비 등 수술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이 우선돼야 하지 않겠냐"며 "센터 직원들이 동의서를 대신 작성할 때도 있다. 무연고 홀몸노인들이 정당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행정당국은 무연고 홀몸노인들의 수술 지연·거부 등 피해 예방에 소극적이다.

제주지역 무연고 홀몸노인에 대한 정확한 현황도 파악하지 않고 있는데다 의료기관의 수술동의서 작성 요구에 대해서는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혼자사는 노인 수는 파악되지만 이들 중 무연고 노인에 대한 현황은 조사된 게 없다"며 "수술동의서 문제도 행정에서 대신 작성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관련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 일부 의료기관이 혼자사는 노인 등 무연고 환자에게 보호자의 수술동의서를 요구하면서 수술이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각 지자체에 '보호자가 없는 독거노인 등에 대해 무리하게 수술동의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지도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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