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논설위원

말짱 도루묵이다. 선거구 조정 문제가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 간단다. '3자회동'을 통해서 괜한 분란으로 시간과 돈만 허비한 셈이 되었으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지난7일, 제주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례대표 정수 축소' 입법추진을 포기하겠다는 오영훈의원의 느닷없는 발표를 접하며 듣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입법철회를 하는 이유가 가관이다. "비례대표 의원 축소를 담은 특별법 개정을 의원발의를 통해 추진해 왔으나 더불어 민주당이 지금까지 추진해 온 선거개혁방안과 맞지 않고 공동발의에 참여한 의원도 3명에 불과하다. 어쩔 수없이 입법발의를 접겠다. 선거구 획정 문제는 현행 법률체계 내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요지이다.

대표발의를 할 요량이라면 소속된 당의 관련 정책 방향 정도는 파악을 했어야 하지 않나.  

이 사태는 제주가 선출직도의원 2석을 더 확보해야하는 과제를 떠안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제주 인구가 증가하면서 제6선거구(삼도1,2동, 오라동)와 제9선거구(삼양동, 봉개동, 아라동)를 분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존 29개 선거구를 31개 선거구로 늘려야 한다. 이건 법적사항이라 불가피 하다고 한다. 

이 과제의 해답으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비례대표와 교육의원 제도는 그냥 두고, 의원 정수를 현행 41명에서 43명으로 2명 증원하는 안을 지난 2월 제주도에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 권고는 방치 되다가 7월 중순경 원희룡 지사와 신관홍 도의회 의장, 강창일·오영훈 국회의원 3자가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담아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합의하면서 내동댕이쳐졌다. 

이 합의가 추진되면서 노동계와 여성계, 소수정당, 시민사회단체, 농민단체 등이 비례대표 축소를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서며 걷잡을 수 없는 비난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갈등이 장기화 되어서 제주사회가 좋을 일이 없다. 지난 7일 오영훈 의원이 입법철회를 발표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는 철회사유가 어처구니 없어서 그랬지 실마리가 이제 풀릴나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제주도정이 "선거구획정위의 권고안인 '의원정수 2명 증원'은 정부입법으로 추진할 시간을 이미 놓쳐 버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권고한 '선거구 2곳 증설'은 추진이 불가하다고 못을 박으며 29개 지역구를 쪼개고 붙이는 방법으로 법적 요건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발표를 접하면서는 도민으로서 위기감이 들었다. 

시간이 없고 급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을 허비한게 누구인가.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을 보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는 것 같다. 이건 책임의식의 문제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월에 권고를 했는데 그간 무엇을 했는가. 

해리 트루먼(Truman) 미국 33대 대통령은 재임 중 자신의 집무실 책상 위에 짧은 문장이 적힌 패를 놓아두었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모든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판단과 결정을 하고 또 상응하는 책임을 받아들이려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이번 도의원 선거구와 관련한 논란 속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지도자는 없었다. 

책임회피만이 아니다. 성취를 위한 적극적 태도도 글쎄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권고안을 제출했을 당시 중앙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설득을 해보지도 않고 벽을 넘기 어려울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포기해 버린 거 아닌가. 시도는 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타 시도가 의원 수를 늘린 것은 법적 근거가 있어서 됐지만 우리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현대 그룹의 창업주 정주영회장은 생전에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하면 "임자가 하기는 해봤어" 라고 반문하곤 하셨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제주도사회를 혼란으로 몰고 간 제주의 현역 지도자 3자에게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묻고 싶다. "임자가 도의원증원을 위해서 노력하기는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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