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주, 제주에코푸드 대표·논설위원

며칠 전 북경 스타일 순다리가 있다 해서 베이징을 찾았다. 원세조 쿠빌라이가 1267년 세운 대도 궁궐터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베이징판 인사동 '난뤄구샹'이라는 750년 전통문화거리가 그곳이다. 골목 한 상점('원우나이라오') 앞에는 '수타락'을 사먹기 위해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몽골어로 수는 우유이고 타락은 요구르트라는 뜻이다. 수제 요구르트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말하자면 수와 타락 즉, 몽골식 순다리 가게인 셈이다.

 맛을 보니 제주 순다리 딱 그 맛이었다. 만드는 방법은 요구르트와 크게 달랐다. 누룩으로 빚은 단술(순다리)를 넣고 우유를 응고시키고 있었다.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만들었다고 한다. 북방 유목민들이 대도를 세울 때 이곳에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삶의 터전을 바꾸면서 그 공법을 바꾼 것이다. 유목 식 자연발효에서 농경민의 양조법을 융합한 기술이다.

원이 망하고 명나라가 이어 받고 그 후 청나라로 기술이 이어졌다. 지금 기술은 청대 이래로 보존된 것이라고 한다. 그 기술은 지난 90년대 중국 정부기 이곳을 문화보존 구역으로 지정하면서 되살아났다. 현재 요구르트 가게는 크게 번성 중이다. 그 배경에는 상품에 오래된 역사의 옷을 입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이징에 타락이 있다면 제주엔 순다리가 있다. 일본에도 없고 물론 육지에도 없다. 웃드르 목축문화가 짙게 묻어 나오는 제주 스타일 발효음료이다. 그 명칭도 유목풍이 아닌가. 고려 말 북방 유목민족과 제주여성이 다문화 가정을 이루어 살았다. 당시 북경 궁전에서는 탐라목장에서 만든 유제품을 자주 찾았다. 유목민들은 발효기술의 귀재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그 문화가 탐라목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리라. 

순다리는 찬 보리밥에 누룩덩어리를 거칠게 빻아 넣고 물을 부어 알알이 푼 다음 오지단지에 담아 상온에서 삭히면 된다. 아침에 지은 보리밥이 약간 변미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부패 직전 식은 밥으로 담아야 새콤달콤 맛이 더 난다.

순다리 만들기는 여자의 몫이나, 마시기는 남자들이 더 좋아했다. 밭갈이를 하다 마소도 지치고 일꾼도 지치면 순다리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질하는 해녀들에게도  몸을 다시 추스르는데 순다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었다. 요즘 운동선수들이 마시는 스포츠드링크나 마찬가지였다. 

순다리는 열처리가 필요 없는 곡물 요구르트이다. 순다리의 맛은 당분이 많아 달콤하며 구연산 젖산 탄산 등 유기산이 많아 톡 쏘면서 새콤하다. 거기에 감칠맛을 더해 순다리 고유의 맛을 낸다. 누룩곰팡이 효소가 녹말을 포도당과 맥아당으로 분해해서 단맛을 내는 것이고, 동시에 누룩 속의 유산균이 포도당을 분해서 유기산을 만들기 때문에 신맛이 나는 이치이다. 감칠맛은 보리단백질이 미생물에 의해 생성된 맛이며 주성분은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이다. 그러니 순다리가 가장 맛이 나는 시점은 보리밥알이 문드러져 삭혀지는 때이다. 

또한 알콜도 생성되기 시작하나 아직 이르다. 고작 1% 미만이니 아무리 마셔도 먹고 취하지 않는다. 보리 순다리는 이렇게 흡수가 잘되는 당분과 유기산이 많아 마셨다 하면, 갈증이 해소되고 에너지가 보충되어 심신의 피로가 말끔히 풀린다. 

그뿐만 아니라 순다리에는 어미니 손에서 나온 우량 유산균이 덩어리째 들어 있다. 순다리 한 사발을 마시면 4~5천만 마리를 단숨에 삼키는 것과 같다. 여름철 순다리를 마시는 사람의 장은 튼튼했다. 그래서 제주에는 대장암이 없었다. 지금은 쌀밥을 먹어 보리 순다리를 빚지 않는다.

북경 전통문화거리에서 '수타락'이 발을 멈추게 하듯 제주에도 그럴만한 아이템이 어디 없을까. 750년 전 제주 성주 양호(梁浩)가 쿠빌라이 칸을 알현 했던 그 곳에서 성읍 민속마을을 떠올렸다. 성읍이 순다리 맛을 세계에 알리는 발신처가 됐으면 좋겠다. 순다리를 지키는 것은 순다리 맛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것이요. 나아가 얽힌 제주역사를 세계인과 공유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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