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혹시… 15년 전쯤 남초등학교에 근무하셨던 선생님 맞죠?"

 지난 금요일 저녁, 북군청에서 실시하는 평생교육 중국어강좌를 받다가 쉬는 시간, 젊고 멋진 강사가 나에게 걸어와 묻는 말이었다.

 "그, 그런데요"

 강사는 당시 옆 반 아이였다. 순간 그 해 내가 맡았던 50여명 아이들의 얼굴이 열 두 살 나이에서 멈춘 채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교직 4년차, 남군에서 3년을 근무하고 제주시에 처음 입성해 발령 받은 학교, 그리고 5학년 4반. 어느 날 1교시를 시작하려는데 3분단 제일 뒤에 앉은 그 애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었다. 가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결석은 아닌 것 같았다.

 "선생님, 실은… 자주 이래요. 5학년 들어선 처음이지만 4학년 때는 더 심했어요"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 애는 일단 등교했다가 가방만 의자에 놓아둔 채 사라져 버린다는 거였다. 또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아서인지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다. 항상 불만에 차 있는 표정이었으며 국어, 수학 모두 부진아에 속했고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그 애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금은 큰 길이 나 버렸지만 남문로터리 광주열쇠 옆 골목으로 들어 가 다시 작은 골목을 서너 번 통과하고 나서야 겨우 조그만 단칸 셋방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없었다. 집주인에게서 대강의 형편을 전해 듣고 그 집을 빠져 나왔다. 스무살의 형은 가출해 버리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가끔 아픈 몸을 이끌고 공사장에 나가는 어머니의 품삯으로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애가 학교에 와도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도망(?)을 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다음 날부터 나는 사랑을 더 쏟으리라 생각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의도적으로 역할을 주어 착한 어린이 표를 주었으며 방과후에는 국어, 수학 공부를 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행상에 불만에 찼던 얼굴은 잠시나마 행복해졌고 학교 생활이 꽤 즐거운 듯 했다. 나는 의기양양해 있었고 이 모든 게 나의 업적인 양 들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파출손데요, 집에 부모님이 안 계셔서 담임 선생님이 오셔야겠습니다"

 경찰관의 사무적인 말투. 한 걸음에 달려가니 그 애는 고개를 숙인 채 빛 바랜 긴 소파에 초라하게 앉아 있었다. 슈퍼에서 과자를 훔쳤다는 것이다. 얼굴도 보기 싫었고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그 애의 행동은 많이 나아졌다.

 수료식날, 그 애는 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을 나에게 건네주며 멋쩍은 웃음을 짓곤 꾸벅 인사하고 가 버렸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쪽지는 꾸깃꾸깃해 있었지만, 거기에선 아름다운 향기가 뿜어나고 서툰 글씨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거로구나,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오늘 저녁 수업이 끝나면 강사 제자와 묻어두었던 추억을 더듬으며 진한 커피를 마셔야겠다.<양효순·한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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