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논설위원

곧 광복 72주년을 맞이한다. 해방을 맞이한 한반도 주민들에게 최고의 바람은 진정한 독립국가의 출범이었다. 그럼 해방을 맞이한 제주도 주민들에게는 어떠했을까? 독립국가와 더불어 섬지역의 자치와 자결 체제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4·3사건의 배경인 해방공간 3년 간 제주도내 상황을 회고해 보면 섬 주민들의 자치에 대한 열망을 여러 곳에서 읽어볼 수 있다. 미군정 당국은 제주도 인민위원회를 정부나 다를 바 없는 유일한 조직체로 평가했다. 4·3 발발 직후 서울에 주재한 미국의 정치고문관이 본국 국무성에 보낸 우편에는, 제주도민들은 이방인들에게 치안을 맡기거나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의 치안을 원한다고 명기하였다. 4·3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 진정한 해방과 자치의 기회를 앗아버린 외적 공권력의 폭력 행사였다. 섬 주민들은 미진한 원주민 취급을 받으며 '미국'과 '육지'의 힘에 공동체적으로 저항하다가 집단학살 당했다.

지난 6월에 섬문화 비교연구를 위하여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을 조사하러 다녀왔다. 사르데냐는 무솔리니 체제 하에서 억압받다가 2차대전이 끝난 후 이탈리아공화국으로부터 1948년 특별자치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후 사르데냐 주민들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자치권 획득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거르지 않고 전개해 왔다. 1970년대까지 섬의 산악지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나토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사르데냐 독립을 주창하는 무장투쟁이 빈발하였다. 1983년에는 분리주의 정당 지도자가 지역의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99년에는 사르데냐어가 이탈리아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사르데냐는 현재 특별자치의 권한을 헌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으며, 입법과 재정의 자결권을 갖고 있다. 섬 내부의 모든 하부 행정구역에 이르기까지 직접 선거를 통한 풀뿌리 자치를 구현하고 있다. 빼어난 해안경관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누라게 거석유적 등을 내세워 한 해 1,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수많은 관광객이 입도함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식수, 교통, 난개발 문제 등에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심각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게끔 미연에 예방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사르데냐는 제주도 땅 면적의 13배나 되며 인구 165만 명의 큰 섬이다. 섬의 곳곳을 다니면서 제주도에 비해 경제 개발이 덜 진척되어 있고, 유휴자원이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만난 지방정부의 관료나 대학 교수들은 사르데냐의 원활한 경제 성장을 구상하면서도, 고도의 자치?자결, 문화적 정체성, 질적 성장, 대체에너지와 미래산업 등을 우선시하는 내적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 또한 주변 코르시카, 마요르카 등 지중해 섬들 간에 현실과 미래비전 공유를 위해 연대회의를 구축해서 교류하고 있었다.

사르데냐의 2014년 1인당 GDP는 19,900유로(2,690만원, EU 평균의 72%)이다. 제주도의 2015년 1인당 GDP 2,628만원(한국 평균 3,089만원의 85%)과 비교하면 서로 비슷한 경제 수준이다. 과거 섬나라였다가 정복당한 역사, 장수문화와 저항의 전통, 종전 이후 관광개발 위주의 경제성장 등 서로 여건이 비슷한 세계적인 섬 제주도와 사르데냐가 앞으로 같은 궤도로 달려갈지 엇나갈지 모를 일이다. 향후 섬이 갖는 특성과 보편성을 서로 비교하고 교류하면서 미래비전의 방향성을 올바로 잡는다면 모두 번영의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본다.

종전 이후 특별자치의 길로 먼저 나아간 사르데냐 섬이 해방 이후 독립과 자치를 지향하다가 4?3의 참화를 겪은 후 반세기 지나서야 특별자치 노선을 선택한 제주섬에 주는교훈과 시사점은 많다. 최근 거론되는 제주의 특별자치권 획득 움직임은 해방 이후 세웠어야 할 지역 자치와 자결체제에 대한 회복운동에 다름 아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날 사르데냐 섬을 떠올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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