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제72주년 광복절]

14일 만난 故 임도현 비행사의 조카 임정범씨가 백부의 항일운동 증거 자료들을 설명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제주출신 故 임도현 비행사
윤봉길 등과 항일운동 불구
여전히 독립유공자 미인정

일제 강점기 당시 윤봉길 의사 등과 함께 조국을 위해 항일 운동을 전개한 제주출신 비행사가 여전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후손들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 곳곳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 제출하고 있지만 십수년 째 정부로부터 '퇴짜'를 맞는 등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14일 만난 임정범씨(62)에 따르면 그의 백부인 故 임도현(任道賢) 선생은 지난 1909년 3월(호적상 1911년 3월) 신좌면 와현리(현 조천읍 와흘리)에서 태어났다.

임 선생은 조천 공립소학교와 만주 봉천 신민 소만중학교를 거쳐 서울 경성중동학교에서 재학하다 중도 퇴학한 후 192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30년 일본비행학교에 입학한 임 선생은 이듬해 12월 비행훈련 도중 동료 6명과 함께 일본군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 장제스의 환영을 받으며 중국 광서성 유주육군항공학교의 창설요원으로 합류했다.

후배 조종사들을 양성하던 임 선생은 '특 1급 요주 인물'이 일본과 조선 땅에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으로부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판단, 1933년 고향이 제주에 몰래 들어왔지만 윤봉길 의사의 거사(1932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로부터 체포됐다.

이후 1년 만에 다시 장제석이 있는 중국 항주 중앙항공학교로 복귀하기 위해 일본으로 이동하던 중 또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한 달간 취조를 받기도 했다.

임 선생은 1934년 만주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왼쪽 머리에 총상을 입었으며, 이후 다시 제주에 몰래 들어와 숨어 살다 1936년 무고·공살 혐의로 기소돼 1937년까지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제주에서 중국으로 탈출하려다 두 차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해방 이후 제주에서 계몽운동을 전개하다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채 1952년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의 조카 임정범씨는 "2005년 이후 수차례 독립유공자 선정 심사가 진행됐지만 국가보훈처는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탈락시켰다"며 "백부의 항일운동을 증명하기 위해 일본경시청 비밀감시목록과 요시찰인 관계 잡찬, 조선총독부 판결문 등 방대한 자료를 제출해도 소용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2009년에는 백부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제주대 법의학 교수팀이 참여한 가운데 유해를 확인하기도 했다"며 "두개골 천공흔이 총상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서까지 받았지만 국가보훈처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임씨는 "지난 십수년간 전 재산을 털어가며 입증 자료를 수집했다"며 "독립을 위해 희생했다는 증거가 충분한데도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받치겠냐"고 성토했다.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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