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 논설위원

요즈음 요양병원을 운영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 그 중에서 특히 어려운 것은 환자의 요구와 정부 정책 사이의 괴리로 말미암은 것들이다.

정부에서는 해마다 치솟는 국민 총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의료수가를 줄이기 위한 정책 개발에 힘쓰고 있으나, 국민들은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므로, 국가 의료 정책에 발맞춰야 하는 병원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 할 때가 많다. 특히 요양병원은 자본주의 체제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이어서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환자 측 입장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워 갈등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요양병원의 수가 체계는 인두제(人頭制)다. 이 말은 요양병원에서의 치료가 개인적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요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치료를 잘 하더라도, 시설이 아무리 좋더라도, 서비스가 아무리 달라도 진료비는 같다. 알기 쉽게 말해서 호텔에 투숙하던 여인숙에 들든 숙박비가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요양병원에서는 치료를 열심히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입원 중에 대학병원이나 특수 진료과에 진료를 받으러 나갔을 경우, 그 병원에서 처방 하는 약이 요양병원에 없든가 고가약인 경우다. 일반 병원에서는약을 쓸 경우 약값을 다 받을 수 있지만 요양병원에서는 포괄수가제여서 아무리 비싼 약을 쓰더라도 따로 약값을 받을 수 없으니 때로는 약값이 요양병원 하루 진료비보다 많아 병원 경영에 지장이 많게 된다. 이것은 한 끼 식사 요금을 7000원으로 정하고 한 사람이 등심을 3인 분 먹어도 7000원만 받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약 종류가 상품명으로는 2만 가지가 넘는다. 한 가지 성분인데도 제약회사마다 이름을 달리 매기므로 한 성분의 약이 수 십 가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약들을 상품명대로 다 비치할 수는 도저히 없다. 가장 큰 대학 병원이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 비치되어 있지 않을 경우 성분이 같은 다른 약으로 대치하게 된다. 그럴 때에 일부 환자분들은 약명이 달라진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여 다른 약으로 오해하고 기왕에 먹던 약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환자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환자의 요구대로 쓰던 약을 그대로 주려 할 경우 병원 운영이 무척 어렵게 된다. 수 천 가지 약을 비치해야 하니 약국의 면적이 몇 배 더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직원도 더 채용해야 하고,  그 약을 다 쓰기 전에 환자가 퇴원하게 되면 그 약을 반품할 수가 없으니 버리게 된다. 이럴 경우 국가에서 보상을 해주지 않으니 그 손해는 고스란히 병원이 떠맡게 된다. 또 거래하는 도매상에 그 약이 없을 경우 다른 약국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적은 양의 약을 배달해 주지도 않고, 어쩌다 약을 사려면 대금 지불을 거래 약국처럼 몇 개월 후불로 할 수도 없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처방권은 진료 의사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이다. 의사는 자기가 처방한 약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니 자기가 선호하는 약을 쓸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 교수가 처방했다고 해서, 또는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점에서 환자분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 않는다고 병원을 원망하기도 한다. 원장이라고 해서 진료 과장님에게 어떤 약을 쓰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환자분이나 가족들은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갈등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소통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중요한 것이 서로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물리에서 마찰이 에너지의 손실이듯 인간 사회에서도 마찰은 줄일수록 좋은 것이다. 도민들께서 요양병원의 어려움을 이해하셔서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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