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익 식신㈜ 대표·논설위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한 중년 남성이 배고픈 배를 쓰다듬으며 나고야 뒷골목에서 맛집을 찾아 서성인다. 외관이 허름한 한 곱창구이집을 발견한 그는 '오늘은 여기가 좋겠군' 하면서 태연하게 들어가서 혼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다. 그는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맥주까지 한잔 시켜 음식을 음미하며 맛있는 음식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오로지 자신만의 행복한 고독을 즐긴다.

만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고독한 미식가'의 한장면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2012년부터 방영된 일본의 인기 드라마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홀로 맛집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즐기고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로 받는다. 이 드라마는 혼자 식사를 탐미하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며 일본에서 혼밥(혼자 밥먹기) 열풍을 일으켰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는 혼밥의 절대 고수다. 대식가를 자칭하는 식신들이 나와 짜장면을 몇 그릇씩 해치우는 한국의 '먹방(먹는 방송)'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왠지 입맛이 까다로울 것 같은 야윈 외모를 지닌 채 담담하게 식사하며 진솔한 표현으로 시청자를 혼밥의 매력으로 끌어들인다.

일본에서는 이제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에게는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처럼 혼자 밥먹고 술먹고 고기를 구어 먹는 것은 이제 자신을 위로하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혼밥러(혼자 밥을 먹는 사람)', '혼술러(혼자 술을 먹는 사람)'는 이제 유행을 넘어서 하나의 음식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1인가구는 총 520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7.2%에 해당한다. 또한 2인 가구 비율도 26.1%로 1~2인가구를 합치면 전체의 약 53%나 차지한다.

최근 '혼밥러'가 늘면서 직접 요리를 하는 것보다 음식 배달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음식점까지 오가는 수고로움 대신 간편하게 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으려는 경향이 커지면서 새로운 외식 배달 시대를 열고 있다. 배달을 하지 않던 맛집의 음식을 배달해주는 프리미엄 외식배달은 일종의 공간적 혁명이다. 소비자는 공간을 뛰어넘어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고 맛집은 공간의 제약을 해소하면서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맛집 배달은 1인 가구의 증가와 현대인의 바쁜 생활 패턴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한 신종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맛집 배달 서비스는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혼밥' 시대가 배달 수요 증가를 이끌었으며, 외식업체들도 비싼 임대료를 내가며 매장 규모를 늘리는 것보다 배달 서비스를 강화하는 편이 더 실속 있고 매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외식 배달은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배민라이더스, 식신히어로, 푸드플라이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최근 글로벌 기업인 우버이츠(Uber Eats)도 가세했다.

맛집 배달 외에 1코노미 시대의 소비방식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는 '타임커머스(time commerce) 앱'이다. 타임커머스 앱은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항공권이나 호텔상품권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앱이다. 현재 여러 종류의 타임커머스 앱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온라인쇼핑몰과 소셜커머스들도 타임커머스 상품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활용분야는 점차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체크인 시간이 임박할수록 가격 할인 폭이 커지는 호텔 타임커머스 앱은 빈 객실을 팔고 싶은 호텔과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하려는 소비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지면서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시간이 임박한 할인 항공권을 저가에 판매하는 '땡처리 항공권' 시장은 전년 대비 6배나 급상승했다. 비행기는 뜨는 순간 그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에 팔지 못한 항공권은 초특가에 판매한다. 땡처리 항공권은 온라인쇼핑몰이나 소셜커머스 등 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 상품으로 등극했다.

이제 대한민국도 오로지 자신을 위해 음식을 즐기고 여가를 즐기는 고독한 미식가의 시대가 도래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