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
'지금 행복한가'란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용기
정답 없지만 알아주고 지키고 다듬는 일 중요
스스로 빛 내지 못해도 인정할 때 자격 생겨
폭염에 마음이 한껏 약해진 탓이었다. 우연히 읽은 몇 문장에 설레 잠을 설쳤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았다. '베스트셀러는 불가능한 책, 그래도 냅니다'라는 문구와 학창 시절 국어 시간 밑줄을 몇 번씩 그어가며 달달 외웠던 변영로 시인의 '논개' 중 "아! 강낭콩 꽃 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라는 부분이다.무엇이 그렇게 좋았냐고 물으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다만 작은 것을 보석처럼 지켜낸 마음 씀이 좋았다 할 뿐이다.
# '~했으면' 환상과 현실 사이
'1인 가구'가 대세라고 그런 사정을 담은 연예 프로그램을 보다 한참 넋을 놓았다. 별 것도 아닌 그냥 '보물찾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제법 이름깨나 알려진 연예인들이 종이쪽지 하나를 찾으려 집중한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심지어 누가 볼까 민망한 자세로 넘어지고 상처까지 나더라도 상기된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그들이 찾은 '보물'은 동심(童心)이라 부르는, 아주 오래된 기억 속 행복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각을 잡고 있던 긴장감을 풀 수 있던 해방감은 아니었을까.
불행하려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잠깐 행복하고 더 많이 불행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비관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다'고 말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죽기 전 '한 번쯤 살고 싶다' 꿈꾸는 워너비 제주를 보자.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산, 깨끗한 공기가 있으니 어떻게 살든 지금보다 낫지 않겠나 싶어 짐을 싼다. 시간차가 있을 뿐 많은 수가 '환상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루가 멀다고 집값이 뛰고, 자리를 잡을라 치면 입대료가 오르고, 육지에서 왔다는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뭔가라는 고민 때문이다.
제주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매년 '행복 지수'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의 작은 오늘이라 더 아프게 다가온다.
#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그 안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답부터 말한다면 '가능'하다.
행복을 주는 파랑새를 찾아다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에서 기르던 새장 속에 새가 바로 파랑새였다는 동화가 있다. 항구에 잇닿은 벰보우 제독 여인숙의 소년 짐 호킨스가 보물섬에서 찾은 것이 그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줬다는 얘기는 책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빤 한 얘기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환경이 바뀐다고 저절로 행복해지지도 않고,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졌다고 남들 보다 마냥 나은 것도 아니다.
매년 제주에서 나고 자란 많은 젊은이들이 가능성을 걸고 큰 무대로 나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제주를 떠나는 것이 무조건적인 정답도, 머무른다고 해서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백 여권이 넘는 책을 내는 큰 출판사에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기억되지만, 한해 열권 즈음을 살뜰히 펴내는 출판사는 몇 권이 팔렸건 자신들의 손을 거쳐간 책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곳,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내 삶이 지금 빛나고 있다면 그 자체가 보물이고, 빛날 준비를 하고 있다면 가공 중인 것이다. 아직 잘 모르겠어도 원석이니 괜찮아 하면 된다.
# 제대로 반짝이게 하는 일
사람 사는 것이 이런 진데 나머지 것들은 오죽할까. 어린 시절 보물찾기의 기억을 끄집어내 보자. 보물이라고 해봐야 연필이나 공책 같은 학용품이 전부였다. 누구나 다 보물의 주인이 될 수도 없다. 대충 그린 보물지도를 하나씩 들고 나무 밑둥의 은밀한 공간이며, 오금을 간질이는 풀 섶 사이 바위 틈이며, 가끔은 나뭇가지에 열매대신 대롱대롱 매달린 '보물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애를 태운다. 뭐든 보물이란 이름의 무언가를 얻는 것도 기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가슴 뛰었던 기억도 즐겁다. 그러고 보니 세상사 숨은 보물 천지다.
제주가 그렇다. '보물섬'제주라는데 정작 뭐가 보물이냐고 물으면 선 듯 답을 하기 곤란해진다.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것도, 청정한 자연이며 하나같이 보물이다.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바람을 숨으로 쉬고, 바다에서 건저올린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 하나하나가 다 보물이다.
어쩌면 '이런 것도 있었구나'느껴지는 모든 것이 보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써야 반짝인다. 대저 오나 월의 명검(名劍)을 가진 자는 그것을 상자에 넣어둔 채 함부로 쓰지 않는다고 했다. 보물을 가지고 있어 보물섬이 아니라 그 보물을 소중히 할 줄 알고 제대로 써야 보물섬이라는 얘기다. 가치를 알고 소중히 여길 때 진정한 보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