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제주지방기상청장

이제쯤이면 갈 때가 되었는데도 머뭇거리며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며 떠나지 않는 여름, 무더위...

몇 번의 시원한 빗줄기가 내려도 갈 듯, 말 듯하며 자꾸만 우리들에게 잊혀 지기 싫은 듯 시샘을 부린다.

2017년 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시원한 수박과 등목, 부채질만으로 여름을 지낼 것으로는 애당초 생각을 안했고, 그래서 에어컨도 새로 장만했지만 그 이상이다.

제주지역 여름철 기온 중에서 특히, 7월의 폭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 1961년 이후 7월 평균기온(28.4℃) 역대 2위, 평균최고기온(31.4℃) 역대 2위, 평균최저기온(26.1℃) 역대 1위, 7월 21일 제주시 최고기온(37.0℃)은 7월 역대 2위, 7월 25일 서귀포시 최고기온(35.8℃)은 7월 역대 1위를 기록했고, 여름철(6.1~8.24)동안 폭염일수는 제주시 22일, 서귀포 5일, 열대야 일수는 제주시 47일, 서귀포 44일을 기록했다.

국내외 언론에서 각종 기온기록을 갈아치웠다는 기사를 연일보도하고 있고, 전문가들은 이러한 폭염과 열대야의 원인을 인간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로 지목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폭염과 열대야를 매년 겪으며 살아갈 운명에 놓인 것이다.

제주지역 올해 장마기간(6.24~7.26)동안 강수량은 평년의 23%인 90.2mm에 그쳤다. 이는 1973년(30.9mm)에 이어 44년 만에 가장 적은 양으로 제주도 북부, 서부, 중산간지역을 중심으로 가뭄이 장기화 되면서 8월 7일부터 일부 마을에 격일제 급수 등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주도 남부, 동부 일부지역에서는 몇 시간 만에 100mm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하고, 시간당 112mm의 폭우가 내리는 등 기후변화의 뚜렷한 현상인 가뭄과 폭우가 동시에 일어나는 형태도 목격할 수가 있었다.

또한, 제5호 태풍'노루(7.21~8.8)'의 이동경로도 그간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태풍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태풍의 2배나 되는 생존기간, 한번의 유턴과 동서남북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지그재그의 이동경로는 과거의 일반적인 태풍경로를 생각해온 예보관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상태풍 말고도 이상 장마, 유례없는 폭염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전형적인 날씨패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현상들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앞으로는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더위나 강추위 같은 극한기상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다분히 현재 최고형이다. 다시 말해 언제나 지금이 가장 덥다 또는 가장 춥다고 여기는 것이다. 올해 여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올 여름이 최악이고, 견디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해마다 반복될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철이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무더운 여름으로 우리를 찾아오겠지만 우리도'호모클리마투스(Homo-Climatus·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인간형을 뜻하는 신조어)'가 되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2017 여름, 차면 비워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 이제 그 자리는'가을'에게 물려주고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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