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이사 논설위원·서귀포지사장

더 느리고 불편한' 버스운행

원희룡 제주도정이 30년만에 확 바꿨다며 시행한 대중교통체계 개편으로 도민 전체가 아우성이다. 도민 세금 800억여원을 들여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한' 대중교통정책을 새롭게 내놓았지만 버스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운전하는 도민들 모두가 집을 나선 순간부터 혼란과 불편의 연속선상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심지어 도지사의 명령(?)으로 공무원들은 버스 노선 안내를 위해 새벽 댓바람부터 41개 읍·면·동 3135개 버스 정류장으로 출근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용객이 많은 도심지 정류장에서는 자신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 버스와 운행노선을 안내하느라 진땀을 빼고, 이용객이 적은 외곽지 정류장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무료함을 달래는 극과 극의 모습도 눈에 띈다.

도는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준비하면서 도내 전역을 시내·시외 구분 없이 시내버스로 통합해 승객(성인 기준)이 1200원을 내면 편리하고 유기적인 환승시스템으로 도내 모든 지역을 이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제주국제공항 출·도착을 기점으로 일주도로, 평화로, 번영로를 운행하는 급행버스 12개 노선이 신설됨으로써 도 전역을 1시간 내외로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두껑을 열자마자 제주도정의 '더 빠르고, 더 편리한, 더 저렴한'의 슬로건이 무색할 만큼 '더 느리고, 더 불편한, 더 비싼' 역주행을 나흘째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중교통 개편으로 혜택을 입을 이용객들이 오히려 종전보다 더 늘어난 배차간격과 환승체계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더 지체되거나 비싼 요금을 내고 있다.   

제주시에서 평화로를 이용해 서귀포시까지 출퇴근하는 도민들은 급행버스가 종전 완행버스에 비해 이동시간은 비슷하지만 요금이 비싸고, 배차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호소했다. 종전에는 10분 배차간격의 완행버스를 이용해 제주시 한라병원 앞에서 3300원을 내면 1시간5분에 서귀포시청 인근의 중앙로터리에 도착했지만 급행버스는 이동시간이 비슷함에도 4000원을 지불하고 있다. 게다가 급행버스를 놓치면 40분후에야 다음 버스를 이용할 수 있어 더 불편한 실정이다. 

급행버스에 비해 요금이 1200원으로 저렴한 일반간선(종전 완행버스)는 시간이 30분 가량 절약되지만 서귀포시 신시가지의 버스터미널 도착후 환승 불편에 애를 먹고 있다. 종전과 달리 터미널에서 서귀포시청사 인근 중앙로터리까지 운행할 환승버스가 2대에 불과하고, 배차간격도 11~33분이어서 출근길 지각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예전보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더 걸리고, 더 늘어난 배차간격으로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을 겪는 이용객들은 원 도정이 530대에서 797대로 증차한 버스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다. 또 배차간격이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좌우하는 기본 조차 모른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뚜껑 열자 혼란·불편 속출

도가 제주시내 도심지의 버스 속도와 정시성 확보를 위해 시행한 대중교통 우선차로제 역시 혼란과 불편의 연속이다. 

버스만 진입할 대중교통 우선차로제에 전세버스와 어린이집·장애인 수송 승합차·택시를 허용하고, 위반차량 단속을 올해말까지 유예한 결과 자가용까지 진입하면서 혼잡이 빚어지고 있다. 제주에 앞서 시행한 서울처럼 첫 단계부터 버스만 운행하는 우선차로제를 고수해야 함에도 전세버스·택시 등까지 허용함으로써 화를 자초한 셈이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해결책은 문제에 있기에 원 도정은 철저한 모니터링을 거쳐 빠른 시일내에 당초의 기대 효과를 도민들에게 입증해야 한다. '성장통'이란 안일한 생각에 젖어 시행착오 기간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혈세 800억원도 무용지물로 전할 수 있다. 덜 익은 과일이 소비자에게 퇴짜를 맞듯이 설 익은 정책을 도민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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