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글귀가 전해져왔다. 다른 세상을 만난 것처럼, 급격한 변화에  감탄하며 수용해온데 따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라지만, 이런 흐름마저 감지하지 못한다면, 시대사조와는 거리를 둔 '둔감(鈍感)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미 70년대에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안덕면의 광평(廣坪)마을'을 답사해온 경험을 갖고 있다.

이 마을은 당시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상한(上限)취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실태를 파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위치였다. 제주도는 타원형이면서, 한가운데에 한라산이 솟아있다. 그런 결과 내륙을 향해서, 고도를 높이면서 거리를 늘려왔다. 이와 같이 양면(兩面)에 걸쳐, 조건을 충족해온 곳이 광평이었다. 고산(highland)지대이면서, 내륙에 자리한 '산촌(山村)으로 주목'을 받아온 것도, 이런데 연유한 것이었다. 

이런 곳에는 '초지(grassland)가 무성'하고, 목축업이 발달하기에 알맞다. 생업기반에서 평지와 차별해온 근거도 여기에 있었다. 유별난 것은 '위탁(委託)목축에 의지'하면서, 방목(放牧)에 주력해온 점이다. 화순 등 해안지역의 경우 축경(畜耕)에 주력하면서도, 농한(農閑)기에 대비한 공동목장확보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강구한 것이 산간마을을 향한 '계절적 위탁사육방법'이었다.        

이때에 대가(代價)로 얻어낸 것이 곡물이었다. 물물교환이더라도, 전업(專業)단계였음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교환경제'에서, 선진화단계를 밟고 있었다. 이것이 작물경작에만 주력해온 일반농촌과 차별된 모습이었다. 이런 내력에 따른 것인지, 광평에는 오늘날 "제주신화역사공원"을 조성하는 한편, 기업농창업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 자체만으로도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pioneer)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의 주산물은 녹차(綠茶)로 변했다. 녹차(green tea)는 한 때에, 신품종의 감귤과 함께 일본인들이 전래해왔음으로, 한반도에 근거해온 전통재배와는 다르다. 최근에는 '녹차의 국내외적수요가 늘어'나면서, 광평은 기업화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이 점진(漸進)적 단계를 거치면서, 식품업종위주의 '기업단지로 격상'하게 된 배경이다. 사업규모는 32억이면서 '상생(相生)과 사랑의 나눔'까지, 실천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2021년에는 매출액이 449억에 이르는 성장지표(指標)를 제시하는 한편, 900명을 고용하는 단계로, 발전상을 보이고 있다. 경영주체마저 주민들이 참여하는 촌락공동체방식임으로 '산촌(mountain village)에서 흔하지 않는 기적(奇蹟)'같은 일이다. 감동적인 것은 이윤추구에만 주력하는 일반기업과 달리, 전통적 미덕(美德)으로 여겨온 측은지심을 발휘하며 '가련한 이웃까지 배려'해온 점에 있다. 

가까이에서 사례를 찾을 경우 "김만덕 할머니의 환생(還生)"이고, 먼 곳으로 눈을 돌릴 때 "품격이 높은 영국신사규범(noblesse oblige)"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자체만을 가지고도 '제주도의 명예와 함께 자부심'을 알리는 징표로 높게 평가하며, 주변을 향해서 시범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근본에서 충의(忠義)를 앞세우고, 생명의 위험까지 감내하며 유배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해온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온데 따른 것이다.  

이것이 근검절약으로 이어진 생활태도이다. 여기에다 '황야(荒野)에서 활동해온 카우보이(cowboy)'처럼, 용맹성까지 추가하면서, 시대사조에 '알맞은 재편성'으로 이어져왔다. 그런 까닭에 '안주(安住)로 일관'해온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를 계기로 '복고(復古)풍의 르네상스시대'를 여는 것도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선진화된 주민의식과 융합을 통하여 '도민운동차원으로 승화'하며, 전국시범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동시에 제주도에 대한 대외적 인식과 위상(位相)까지 높이면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활용할 때인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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