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영 제주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소장, 논설위원

끝날 것 같지 않던 폭염도 기세가 꺾였다. 유난히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우리나라 기상관측 사상 두 번째로 더웠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던 어느 날 계단·화장실을 청소하는 미화직원들의 옷이 아침부터 땀범벅이다. 짬을 낸 휴식시간, 공공시설임에도 이들의 휴게실에는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낡은 선풍기 1대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밤새며 건물을 관리하는 숙직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물주가 바뀌고 관리업체가 교체되면서 고용승계는 이뤄졌지만, 처우나 휴게시설은 달라진 것이 없다. 변변한 샤워장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1년 단위의 계약으로 업체의 계약불안정성이 증가해 근로자들에게 피복마저 지원되지 않는 등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관리업체는 내년 재계약 보장이 없으니 파견근로자들의 처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이번 여름 치솟았던 수은주만큼이나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골자는 이렇다. 우선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원칙 정착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OECD수준으로 감축한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으로 차별 없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 대기업·공공부문의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에 대해 원청기업이 '공동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 3명 중 1명(2016년 32.8%)이 비정규직이고, 이들의 임금도 정규직의 65.5%에 불과한 점을 감안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그리고 정규직화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면서 비정규직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추진과 동시에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환경 실태 파악과 처우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현재 제주도나 출자 출연기관 등의 공공시설에 대한 관리용역은 대부분 아웃소싱업체에 맡기고 있고 '최저가격 입찰제'로 계약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업체는 근로자들의 처우보다 계약을 따내기 위한 비용절감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국가계약법의 '맹점'이다. 비정규직의 근로여건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선 안될 일이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고용친화적 평가' 제도다. 공공부문부터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아웃소싱 업체 선정 시 원가에 포함된 인건비의 실제 지불 여부와 근로자의 계약기간 등 고용안정성 보장 여부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어 계약 시에는 임금체불 금지·근로자 보호 등 사업자의 성실한 의무 이행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화·경비 등의 파견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 등 환경개선은 '원청'의 사회적 책임 관점에서라도 공공시설의 관리주체가 나서야 한다.

또한 공공부문은 '모범적 사용자'로서 고용시장을 주도하고 선도해 나가야 한다. 공공부문의 주체인 정부는 고용시장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절차에서 민간부문과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이익을 좇아야하는 민간이 '양(量)'을 지향하더라도 대민 서비스가 우선인 공공은 '질(質)'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유럽연합(EU)은 고용기회, 좋은 일자리, 노동권 준수, 사회 통합, 기회균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공공조달(SRPP)'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것의 유력한 대안이 바로 '최고가치 낙찰제'다. 단기적인 비용이 아니라 공공조달의 장기적 지속가능성·품질, 나아가 사회적 가치 등의 총합을 적극 반영해 계약하는 방식이다. 

당장 이 제도의 도입이 어렵다면 기존 틀 내에서 '모범적 사용자'의 길을 찾아야 한다. 유럽연합처럼 많은 가치를 담지는 못해도 최소한 '인간의 자존감'은 지킬 수 있도록 용역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 파견 근로자들의 근로환경실태파악과 개선이 시급하다.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는 '을'의 파견근로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복지-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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