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사회경제부장 대우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1863년 집권하면서 국정 전반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 외교적인 면에서는 철저히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전통적인 우호국인 청나라를 제하고는 일본과 서양과 교류를 철저히 차단하는 정책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의 유입을 단호히 배격하게 됐고, 1866년 프랑스와 병인양요를 벌였고, 1871년에는 미국과 신미양요까지 일으키기도 했다. 서양열강의 문호 개방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졌지만 흥선대원군은 1871년 전국에 척화비까지 적극적인 쇄국정책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결국 흥선대원군의 강한 자세로 서양열강은 통상 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반도를 국제 정세는 문호 개방의 필요성과 열강으로부터의 국권수호라는 상호 모순된 상황에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해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조선이 서양과 일찍 교류해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의 쇠락을 막고, 일본처럼 산업국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오히려 서양열강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오히려 조선의 식민지화가 더욱 앞당겨졌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당시 세계적 흐름속에서는 서양열강과의 교류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고, 사전에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을 준비를 했다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제주도는 돼지열병 비백신 지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역 국내산 돼지고기 반입을 막았고, 전국에서 유일한 축산질병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 돼지고기 유입이 차단되면서 다른 지역보다 국내산 돼지고기 가격이 크게 비싼 상황이다. 제주 양돈산업이 이러한 보호를 받게 되자 오히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구노력은 약해지고, 최근 축산분뇨 무단배출이 잇따르는 도덕적 해이도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다른 지역의 국내산 돼지고기 반입을 허용해 경쟁과 견제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주 양돈산업도 울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고, 도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