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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과 미국 반공정책, 제주 탄압 이어져"
김봉철 기자
입력 2017-09-22 (금) 21:14:05 | 승인 2017-09-22 (금) 21:16:22 | 최종수정 2017-09-24 (금) 14:11:26

제주4·3연구소 22일 3·1사건 70주년 국제학술대회서
허호준·주립희 등 시대상황 고찰…문경수 교수 반론도

1947년 관덕정에서 발발한 3·1사건은 냉전체제 초기였던 당시 세계적 상황과 깊이 연관돼 있고, 특히 미국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제주4·3연구소(소장 허영선)는 제주3·1사건 제70주년을 기념해 22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제주3·1사건과 1947년 동아시아' 주제 국제학술대회를 갖고, 3·1사건을 전후한 동아시아와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진단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1부 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의 1947년'과 2부 광주·전남 등 '제주3·1사건, 그리고 한국사회'로 나눠 진행됐다.

허호준 한겨레신문 기자(정치학 박사)는 '1947년 냉전체제의 형성과 제주도'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의 반공정책으로 강력한 4·3 탄압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1947년 3월 발표된 트루먼 독트린으로 인해 미군정에게 반공정책 강화의 명분이 생겼고, 이후 실제 탄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어 "당시 미군정은 3·1사건에 이어 발생한 3·10 총파업에서도 미군정은 도민보다 경찰을 두둔했고, 제주 총파업을 전국적인 파업의 시발점으로 여기면서 제주를 공산주의자들의 거점으로 인식했다"고 덧붙였다.

주립희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는 미국 극동사령부의 제주 학살 개입 가능성 등을 거론하면서 대만의 2·28사건과 제주4·3의 국제 연대를 통해 미국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공동협력을 제의했다.

반면 문경수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냉전체제와 재일조선인' 주제발표를 통해 "당시 미군은 동북아시아에 냉전 확산보다 친미정권 확보가 우선이었다"며 "특히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시작된 것은 1949년 중국 혁명 이후이기 때문에 3·1사건 이듬해인 1948년 제주에 대한 억압정책이 냉전에 따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반대 의견을 보였다.

'1947년 제주3·1기념대회 주도세력에 대한 소고'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양정심 성균관대 교수는 "3·1기념대회와 3·10총파업을 주도한 세력이 남로당 제주도당을 비롯한 좌익세력이었고 이들은 4·3봉기에서도 주도세력이 됐다"며 "하지만 남로당만이 전부가 아니며, 평범한 하급 당원이나 도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며 함께 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3·1사건은 1947년 관덕정 앞 광장에서 3·1절 기념집회 과정에서 경찰이 군중에게 총을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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