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학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회 교육위원장

내년이 4·3 70주년이다. 4·3 기행 준비를 위해 지난 23일 동광리 4·3 올레길 현장을 방문하였다. 80세 되시는 어르신이 반갑게 4·3길을 안내해 주었다. 11살 때 큰넓궤에서 피신했던 당시 4·3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큰넓궤는 '지슬' 영화의 배경으로 당시 생활은 영화의 상황보다 더 참혹했다고 한다. 무등이왓은 마을주민 160여명이 희생됐던 곳이다. 어르신은 토벌대의 진입으로 한꺼번에 19명이 희생당한 곳을 가리키며 당시의 기막힌 상황을 전했다. 가족 시신을 수습하러 온 주민들을 토벌대가 다시 학살을 가했던 잠복 학살터, 해안마을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늙은 어머니와 함께 남아있었다. 학살당한 아들, 이후 어머니는 돼지우리에 숨어 살다 굶어 죽은 사연, 일가족 모두 몰살당해 후손이 없는 집안의 사연 등 마을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였다.

요즘 5·18 영화인 '택시운전사'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광주를 전한 독일기자 힌츠페터 못지않게 4·3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는 이 어르신이야말로 4·3의 산증인이요, 제주의 영웅이다. 4·3을 체험하고 증언하는 분에 대한 행정의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인근의 제주역사신화공원은 막대한 외자유치로 완성 단계인데 제주의 역사·신화보다 콘도시설과 카지노 시설, 놀이공원 등의 휴양시설 위주로 갖춰졌다. 이에 비해 진정 제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광리 잃어버린 마을과 4·3 피해의 상징이 된 큰넓궤 등은 너무 허술하게 방치되고 있다.

4·3역사현장 보존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위정자들은 4·3 교육과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해가 지날수록 당시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동광리 마을 복지회관에는 간단한 4·3길 안내판과 해설사 2명 배치된 것이 전부이다.  인근의 구억초등학교는 토벌대와 무장대의 평화회담 장소였고, 알뜨르 비행장에 섣알오름 학살터가 있다.

자치단체와 도의회는 조례를 제정하고 필요한 행정적 조치를 취해 사라져가는 역사현장 보존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유족 1세대들의 구슬증언을 토대로 한, 4·3 현장보존과 체험시설도 서두를 필요하다. 10년 후 4·3 80주년이 되었을 때, 4·3을 증언할 수 있는 어르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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