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주 사단법인 제주올레 상임이사·논설위원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걷기가 신체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걷기가 생각을 깊게 하고, 일탈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주올레 길을 아직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제주 아이들이 많다. 누군가는 아이들의 취향과 호불호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이의 건강과 다양한 활동을 챙겨주고 주말이면 올레길로 소풍을 가자고 이끌어주는 부모가 없는 아이라면 더욱 더. 영어 교육이 계층간 격차를 심화 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올레길 걷기 같은 단순한 활동조차 계층간 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우리 사회 현실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별거, 이혼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한부모 가정과 조손가정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혼율이 높은 제주 지역사회 특성상 한부모 가정과 조손가정 비율(약 12.4%)은 전국 평균(약 10.9%)보다 높다. 이들 가정 가운데 절반 가까이(41.5%)는 기초 생활보장 또는 저소득 상태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은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우울증이나 불안심리 같은 문제도 두 배 이상 심하게 겪고, 범죄율(약 1.4%) 역시 일반 가정(약 1.0%) 출신 청소년보다 높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지원은 경제적 지원과 같은 일부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올레길 걷기를 통해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을 해소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GKL사회공헌재단 후원을 받아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 및 청소년을 초청해 1박 2일 '한 걸음 제주'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올레 길을 걸으며 제주의 문화와 환경에 대해 느끼고 올레길 길동무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의 눈빛은 매우 똘망똘망하다. 길을 걸으며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를 떨 때는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버려진 천을 재료로 간세인형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표선면 세화3리에 들러 마을 삼촌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버려진 소주병을 잘라 허브 캔들을 만든다. 아이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가 하면,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익혀 간다. 한 걸음 제주 캠프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등을 포함해 10월 말까지 총 3차례 운영된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걷기를 통한 청소년 치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소년원에 수감 중인 15~18세 청소년들이 3개월 동안 하루 25㎞이상 총 2,000㎞를 걸으면 석방을 허가하는 교정 프로그램인 '쇠이유(문턱이라는 뜻)'가 대표적이다. 아이들은 3개월 동안 걸으면서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이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돌아보고 현재를 최대한 즐기면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2,000㎞를 걷는 내내 생각하고, 동반자(자원봉사자, 심리 상담가 등)와 함께 얘기하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적 장벽을 없앨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한다. 걷기 전에는 '어른은 나의 적(敵)이고 대화가 안 되는 상대'라고 치부했지만 걷기를 통해서 어른과의 새로운 관계를형성하고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한다고 한다. 쇠이유 프로그램은 청소년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보통 수감자들의 재범률은 85%에 이른다. 그러나 걷기를 통한 프로그램을 마친 청소년의 재범률은 15%로 떨어졌다. 즉 85%가 문턱을 넘어 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가정환경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 때문에 자존감을 잃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훈련하고 치유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걷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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