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 제주영화제 기획이사

요즘 제주영상위원회가 설립 이후 가장 큰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8월 31일 오후 5시에 개최된 제주영상위원회 이사 간담회 자리에서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 관계자가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할 예정이니 제주영상위원회는 곧 해체되어 진흥원 내부로 흡수·통합된다는 확정적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만일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더욱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볼 수 있다. 제주영상위원회 해체 여부는 제주영상위원회 총회에서 의결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이미 해체를 결정하고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된다는 일방적인 통보는 매우 적절하지 못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현재 제주영상위원회 이사들은 제주영상위원회와 관련된 모든 의제를 적어도 사전에 결정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로 자신들이 의결하지 않은 기구의 해체 결정 사안이 미리 거론된다는 것이 얼마나 상식적이지 않으며 부당한 처사인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엉뚱하고 예의 없는 그리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히 개념 없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오래 전 많은 노력 끝에 특별자치도의 법적 위상을 획득하고 그 이후에 열심히 운영을 해보려했지만, 제주도 예산이 부족하고 운영하는 사람들도 전문성이 없고 게다가 성실성도 없으며 그로인해 책무감이 결여된 채 10년 이상을 제주도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제주도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해보자.

보통 이럴 때 현명한 제주도민 대부분은 리더인 도지사를 잘 뽑아야 한다고 반성한다. 그런데 특정 분야의 어떤 전문가가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렇게 된 이유는 제주도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아 뭘 할 수가 없고 제주도정을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공무원들이 많지 않아 도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하자.

그래서 좋은 방안이 있다며 전라도와 제주도는 예전에 같은 행정관할기구였으니 제주특별자치도를 전라도에 다시 흡수·통합하게 해서 전체 예산을 더 많이 받고 전문적인 전라도 공무원들과 함께 제주도를 위해 더 노력해보자며 정부에게 요청해보자고 했고, 제주도정은 이를 수용하여 특정 기관에 용역도 맡기고 그런 결과가 나오길 노력한 결과 근거도 마련하여 정부에 타당성을 보충하며 성실한 노력을 펼쳤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 곧 제주특별자치도를 전라도에 흡수·통합하게 되어 제주도민들에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이 가정을 계속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필자는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일련의 모든 가정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사)제주영상위원회와 아직 설립 예정인 (재)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은 매우 다른 기구이다. 매우 다른 기구를 흡수·통합하겠다는 것은 제주영상위원회 본래의 정체성에 부합되는 독립성을 무력화하고 전문성(차이성) 또한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형국이다. 

제주영상위원회는 한국 각 지역 영상위원회 중에 가장 강력한 법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기구이다. 제주특별법에 의해 그 지위와 역할을 보장받은 유일한 지역이다. 다른 지역은 해당 위원회가 법제적 지위가 미약해서 다른 유관기관에 흡수되어 있거나 모태삼아 분리·독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흡수·통합해야 하는 논거를 들 때, 운영을 잘 하고 있는 부산영상위원회나 서울영상위원회를 롤모델로 삼아야 하는데 독립성과 자율성에 문제가 있는 지역의 사례를 논거로 드는 불편부당한 태도도 깊은 유감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법에 적시되어 있는 제주영상위원회의 지위와 역할을 보장하고 하루빨리 공석으로 방치하고 있는 제주영상위원회의 운영위원장을 뽑고 기구의 정상화를 도모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여 인적 쇄신을 통해 제주영상위원회의 본연의 정체성을 지켜 제주지역 영상문화발전을 육성하는 기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현명하고 지혜로운 고민을 하길 기원한다.  또한 제주지역영화인들과 제주를 사랑하는 한국영화계가 제주에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이 본래의 정체성에 맞게 설립되는 것을 존중하고 성원하듯,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제주영상위원회의 본연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제대로 육성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개념 있는 고민을 하길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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