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논설위원

회고록(回顧錄), 문자 그대로 지난 일을 회고하여 적은 기록을 말한다. 회고록은 개인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 쓴 역사나 기록으로 자서전과 상당히 비슷하며 종종 혼동되기도하지만, 외적 사건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어 자서전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역사적 사건에 직접 가담하거나 그것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들로, 회고록을 쓰는 목적은 그 사건들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것이다.

30여 년간의 침묵을 깨고 출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사실의 왜곡과 염치없는 자기변명으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난 8월, 법원은 5·18기념재단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과 배포를 금지시킨 바 있다. 하지만 두 달 여가 지난 10월, 전두환 측에서 '전두환 회고록'이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였다는 변명과 함께 재출간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을 담당한 회사는 서평을 통해 이 책이 "한 개인 전두환의 삶의 궤적을 적어놓은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격동기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고, 지금도 그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서다. 역사는 신화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되더라도 제대로 바라보고진실 되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진정한 역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면서 "또 다른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전달해줄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 문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나, 역사로서 "제대로 바라보고 진실 되게 받아들이기" 위한 제일 큰 전제조건인 서술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과연 얼마나 담보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역사학자로서 커다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회고록은 지은이 스스로의 기억에 의존한다. 개인의 관찰과 경험에 의존하여 글이 기술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사건에 따라 자료화 되지 않은 사실보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당사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성한다. 그만큼 말하는 자의 관점에서 당시의 사건을 조망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8월 내려졌던 법원의 출판과 배포금지 판결은 회고록 내용 중 ▲헬기사격은 없었다(379쪽 등 4곳)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535쪽 등 18곳)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382쪽 등 3곳) ▲전두환이 5·18의 발단에서부터 종결까지의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27쪽 등 7곳) ▲1980년 5월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시위대의 장갑차에 치여 계엄군이 사망했다(470쪽) 등 30여 가지 내용을 명백한 허위 사실로 판단했기 때문에 내려진 것이었다.

전두환의 회고록은 역사학 연구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분류하자면 고의성이 있는 사료(史料)다. 즉 이 기록을 만든 작자가 어떤 한 부분의 지난 사건을 남겨둘 의사를 가지고 서술한 것이다. 대개 유명인의 회고록이나 공공기관의 선전책자 등은 고의성이 아주 강하게 드러나는 역사자료로 분류된다. 그러나 거짓을 만드는 사람이 100가지를 비밀로 하면서도 한 가지를 소홀히 해 무심히 진상을 흘려 내보내는 경우 또한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역사의 생명력이 존재한다. 100가지가 다 주밀(綢密)하게 짜였어도 한가지에 소홀했고, 아직 없어지지 않은 양심이 덧붙여져 역사의 진정한 모습이 숨은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근래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숨겨져 왔던 진실들이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 개인의 그릇된 의지로 서술된 거짓기록이 역사의 생명력을 소멸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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