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 논설위원

김환기(13), 김기창(13), 이쾌대(13), 박수근(14), 전혁림(15), 이중섭(16), 최영림(16), 이봉상(16), 유영국(16), 박고석(17), 장욱진(17) 등이 최근 몇 년 사이를 두고 태어나 100주기 탄생을 맞은 화가들이다. 유독 이 기간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미술가들이 집중되어있는 것이 이채롭다. 

김환기가 환기미술관, 박수근이 박수근미술관 및 가나아트센터, 전혁림이 전혁림미술관(통영) 및 이영미술관(수원), 이중섭이 이중섭미술관(제주 서귀포) 및 국립현대미술관, 유영국이 국립현대미술관 및 부산시립미술관, 장욱진이 장욱진 미술관(경기 양주) 및 가나아트센터, 박고석이 현대화랑에서 각각 기념행사가 열리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일별할 수 있어서 한껏 안복을 누렸다고 하겠다. 이렇게 풍성한 미술의 잔치는 처음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김환기, 전혁림, 이중섭, 장욱진이 미술관이 세워져 있어 행사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여간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미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을 뿐 아니라 연구도 활기를 띠고 있음은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다. 덩달아 이들의 작품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현상도 결코 나쁜 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 

창작한다는 일과 작품을 보존한다는 일은 다른 것이다. 미술작가가 일일이 자기작품을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품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관리소홀로 일어난 일이다. 아무리 많은 창작을 하였어도 작품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미술가에겐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존은 누가 하는가. 물론 궁극적으론 국가가 할 일이다. 모든 창작은 종내에는 국가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도 그런 인식의 시스템이 제대로 발동하고 있지 못하다. 우선 국가의 보존 이전에 작가의 가족과 그와 더불어 살아온 주변이 챙길 수밖에 없다. 현재 세워진 미술관들의 경우 대부분이 유족이나 주변의 적극적 관심의결실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기되는 것은 화가의 부인들이다. 누구보다도 작품의 보존에 적극적인 이는 부인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화가들이 불행한 생애를 보냈다. 그 불행한 삶은 내조자인 부인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어쩌면 화가는 자신의 창작으로 인해 고생을 감내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옆에서 보고있는 부인은 창작의 희열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었다고 본다면 화가보다 그 부인이 더 많은 고생을 한 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창작을 기리는 사업에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이는 대개가 그 부인들이다. 부인을 중심으로 전 가족이 고인을 받드는 예도 없지 않으나, 대개 작품이 산실되는 경우는 그 자식들에 의하고 있음을 적지 않게 목격해온 터이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은 화가가 작고한 이후 곧바로 문화재단을 만들어 작품의 보존과 더불어 작가를 알리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김환기의 작품가가 현재 최고치를 형성한 것도 이 같은 내공에 기인한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월북한 화가 이쾌대의 작품은 88년 해금이 되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만약 그 부인이 남편의 전 작품을 자기 목숨처럼 보존하지 않았더라면 이쾌대란 화가는 미술사에서 완전히 지워졌을 것이다. 화상들의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쾌대가 남쪽에 두고 간 작품은 제대로 보존되어 수차에 걸친 전시를 통해 재조명된 것은 눈물겨운 사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섭과 일본인 부인 마사코와의 순애보는 100주기 행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셈이다. 흩어진 작품을 다시 모으고 미술관을 만들 수 있게 한 장욱진의 부인, 고인의 작품을 모아 다시 한 권의 화집을 만들어 전시를 가진 박고석의 부인, 역시 100주기 전을 독려한 유영국의 부인들이 없었다면 그처럼 100주기 전이 원만히 꾸며질 수 있었을까. 

미술계 내면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곧잘 자식들은 열심히 작품을 팔려 하고 부인은 열심히 작품을 지키려고 한다는 말이 공연히 지어낸 말은 아니다. 헤어지면 남남일 수밖에 없는 부부 사이가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와 자식 사이보다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가 있는가 하고 말들을 한다. 자식들은 작품을 재산으로 보고 부인은 작품을 남편의 분신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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