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관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논설위원

맹자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와는 함께 말을 나눌 수 없고 스스로를 버리는 자와는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자포자기한 사람과는 상종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자포자기의 주역이 내 자녀라면 말이 달라진다. 

우리사회에 자포자기하는 세대가 있고 이를 보듬는 부모세대가 있다. 그들은 베이비부머와 에코부머이다.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 이후 출산 붐이 일었던 1955년~ 1962년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이들의 2세를 에코세대(1979~1992년생)라 부른다. 베이비부머들이 결혼을 하면서 출산율은 다시 한 번 폭발하였는데, 출산 붐 현상이 마치 메아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30대에 넓게 포진되 있는 에코세대는 취업전선에 진입하면서부터 취업난에 시달렸다. 변변한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삶의 과정을 하나둘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여 삼포, 여기에 집을 포기(사포)하고 인간관계마저 끊는다(오포). 인간관계 단절은 절망으로 이어져 꿈과 희망(칠포) 마저 접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들 에코부머들이 독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 의존을 하는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의 그늘에 주저 앉아버렸다.

이지경의 자녀가 부모에겐 목에 가시다. 맹자님 말씀이 아무리 진리라 하더라도 못난 손가락이 깨물리면 더 아픈 법, 자포자기하는 자녀를  단절이 아니라 고스란히 품어 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모도 버겁다. 

베이비부머는 고도성장 덕택에 직장걱정 없었던 세대라고 하지만 40대 언저리에서 IMF가 들이 닥쳤다. 자녀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생애주기 단계를 지나가고 있었기에 이른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매서운 칼바람을 가장 뼈저리게 맞은 세대다. 당시 '사오정(45세 정년)'으로 상징되는 조기퇴직은 창창한 나이의 이들을 위기로 내몰았다. 

이후 IMF를 극복한 나라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무너진 개인의 삶까지 극복된 나라는 아니다.  중년의 나이에 일하던 직장에서 나와 번듯한 일자리를 다시 찾기가 어디 쉬운가. 비정규직, 단순노무직으로 살아온 베이비부머가 부지기수다. 자영업도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이들 대학졸업까지만 버티면 허리를 펴겠거니 했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자식 뒷바라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베이비부머는 노부모도 부양해야 한다. 자신을 위한 노후준비는 언강생심이다. 이런 베이비부머들이 노후포기, 은퇴포기, 피부양포기의 삼포세대가 되어 가고 있다. 

지난세대까지는 자녀를 양육하고 나면 자녀가 나이 든 부모를 다시 부양하는 선순환구조였다. 아들딸이 연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이 든 부모가 자녀를 역부양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육십갑자를 돌아 환갑을 맞기 시작했다. 뒷물에 밀려나는 앞물처럼 일선에서 서서히 퇴장하는 중이다. 노부모 부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노후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 대한민국 베이비붐 세대다. 

염낭거미는 알을 낳으면 밀폐된 산란실을 만든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때까지 곁에서 지키다가 새끼가 세상에 나오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주고 죽어간다. 

동물의 세계에서 염낭거미가 제 새끼를 살려내는 것은 무조건적인 부모희생이지만 인간세계에서는 이 법칙이 어긋날 수있다. 무조건적인 부모희생이 자녀를 반드시 살려내지는 않는다. 자칫 자녀가 미래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심리적 탯줄을 끊는 것이 훗날 자녀사랑의 결과로 돌아올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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