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제주국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논설위원

출근길, 집 앞 골목을 빠져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 대도로와 만나는 길인데도 전날 세워둔 차들을 옮기지 않아 신호등 인접한 곳까지 마주 오가는 일이 불편해진지 오래다. 이웃을 배려하는 시민정신이 아쉬운 이 때에 마침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이론이 활용된다면 출근길이 훨씬 편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넛지'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탈러 교수가 수상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에 이어 행동경제학자들이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적임을 밝혀내며 공감을 얻고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비합리적이라는 전제하에 일어나는 심리적 행동 패턴을 찾아내어 저절로 행동이 변화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장점으로 기업이나 공공정책에 도입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생활 주변의 다양한 장소에서도 전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명한 사례로는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변기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어 변기 주변의 오염을 감소시킨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당부의 메시지에도 반응하지 않던 사용자들이 변기에 그려 넣은 파리에 집중하면서 화장실이 저절로 깨끗해지도록 의도한대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겨울철 집중적인 전기 사용을 절감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전기요금이 이전 달에 비해 많이 나온 가구에는 빨간색 고지서를, 변동이 적은 가구에는 노란색 고지서를 배포했다. 고지서의 색상을 달리 하는 것만으로도 빨간색을 전기 과다사용의 경고 표시로 이해하여 사용량을 줄이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 외에도 특히 조심해야 할 도로에서 속도감을 느껴 속도를 줄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그재그선이나 점점 간격이 좁아지는 가로선을 그려 넣어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이를 적용한 방법이다.

이 이론의 우수성은 불편함을 해소하는데 있어, 자발적인 행동변화를 유도하는데 있다. 누구나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는, 주의깊은 관찰과 통찰력이 필요하다. 남성용 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던 미국의 한 셔츠 생산 기업은, 밖으로 꺼내 입어도 어느 바지에나 어색하지 않고 보기 좋은 셔츠 길이를 찾아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이러한 제품을 만들어낸 기업이 없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고 한다. 2011년 창업한 이 기업은 지난해 약 113억원의 매출과 2000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대상이 원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가까운 위치에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데, 이는 부단한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제주는 교통문제, 쓰레기 문제 등 산적한 불편함에 따른 삶의 질이 이슈가 되고 있다.  친환경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지켜내야 할 것임에도 폐기시설의 부족과 폭증하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전국 1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데, 복권기금을 통해 클린하우스 등 생활환경 취약지구개선을 위한 일자리사업으로 투입되는 사업비가 올해만 해도 100억원이 넘는다. 그나마 이러한 사업을 통해 쓰레기 분리배출을 유도하고 불법투기 등에 대한 홍보와 관리가 이루어짐으로써 쓰레기를 절감하고 재활용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행동경제학 이론이 적용된다면 말과 글을 통한 캠페인이 아니어도 적정한 쓰레기 배출과 처리가 가능해지고, 버스로 편하게 다니는 적극적인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책을 구할 수 있음직도 하다. 기존에 해왔던 익숙한 방법을 넘어 공공정책에도 습관적 관찰을 통한 다양한 적용이 필요하다. 위대한 것은 반복된 시간의 축적을 통해 좋은 것을 넘어선다. 물론 지속적인 습관과 행동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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