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아마존닷컴을 세운 제프 베조스가 빌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1등 부자가 됐단다. 그는 미혼모의 아들이다. 18살 아빠는 떠나갔지만 16살 여고생엄마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다정하게 대해주고 함께 놀아주곤 했기에 그는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 그도 대학원생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오프라 윈프리 역시 빈민가 미혼모의 딸이었고 그 자신도 14살에 미혼모가 되기도 했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한국에서라면? 제프 베조스와 스티브 잡스, 오프라 윈프리 같은 아기들이 아예 태어나지 못했거나 어쩌다 태어나도 기를 못 편 채 살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혼외자녀 출생률은 1.9%로 OECD국가 중 가장 낮다. 프랑스(56.7%)나 노르웨이(55.2%), 스웨덴 (54.6%), 영국(47.6%)에는 비교가 되지 않고, OECD평균(39.9%)에도 한참 못 미친다[OECD통계, 2014]. 우리나라에서는 비혼(非婚)임신의 96%가 낙태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태어난다고 해도 70%가 입양된다[한겨레, 2016.10.22.]. 이제는 미혼·비혼 출산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미혼·비혼모가 아기를 가지거나 낳을 경우 '헤픈 여자'라거나 '불륜'이라고 여기던 '곱지 않은 시선'도 이제는 거둬들여야 한다.

프랑스 법무장관을 지낸 라시다 다티는 2009년 장관재임 시절 미혼으로 임신해 출산했다. 그는 당당하게 부른 배를 안고 국정을 수행했다. 아무도 그를 비난하거나 비웃지 않았다. 

해외로 나간 우리 아이들의 고생과 한(恨)스러운 삶도 헤아려야 할 때가 됐다. 성공한 입양인들은 소수이며,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인 입양인들이 더 많다고 한다[해외입양인모임 대표 제인 정 트렌카]. "엄마는… 딸을 입양시킨 게 최선이었다고 철석같이 믿으시는데…, 양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1972년 서울서 태어나 6개월 만에 미국에 입양됐다가 23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고 있는 어느 귀국여성의 말은 너무 아프게 들린다.

"앞만 보고 가. 뒤돌아보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 걷다가 뒤돌아봤더니 없어져 버린 엄마. 거리의 아이들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구걸과 도둑질로 연명하던 소년. 미국에 입양돼 마음씨 좋은 양부모 덕택에 직업고등학교를 거쳐 공장에 들어가 스스로 노력하면서 살아온 사람. 그는 자수성가해서 사업가가 됐지만, 양아버지에게 얻어맞아 숨진 한국인 소년 현수를 잊지 못했다. 서투른 솜씨로 '현수'를 재현해낸 조각을 만들어 세운 입양아 출신 사업가 토머스 클레멘트. 그에겐 해외 입양아가 모두 '불쌍한 현수'로 보인다.    몇 년 전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 여성이 장관이 돼서 한국에 온 일이 있었다. 플뢰르 펠르랭. 올랑드 대통령 시절 6년 간 3개 부처 장관을 지낸 다부진 이 여성은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난 뼛속까지 프랑스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가슴에 맺힌 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이제는 미혼모도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사회가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줘야 한다. 복지행정을 맡은 분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 있다. "고아원에는 한 아이 당 매월 105만원을 정부가 지원해준다. 이 돈 105만원을 아이와 헤어질 위기의 가정에 매달 주면 그 아이를 집에서 키우지, 누가 고아원에 데려가겠나."['뿌리의 집' 김도현 원장, 주간조선 2206호(2012.5.14.)]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미혼?비혼모가 낳은 아이도 떳떳이 기를 수 있어야 정말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 동거커플을 인정해주고, 그들이 낳은 아이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면 출산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 2006년]가 아닌, 포용하고 함께 번영하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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